망국적인 수도권 집중화가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곳곳에서 켜진 지방 소멸 신호는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이에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 초유의 사태로 인해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불붙고 있는 개헌 논의에 지방분권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9차 개헌까지 39년이 걸렸다. 그 중 ‘87체제’가 유지돼 온 게 38년에 달한다. 87체제를 통해 대통령직선제라는 민주주의를 쟁취해 냈고 이는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며 OECD 국가이자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토대가 됐다. 그러나 모든 인재와 자본, 권력을 수도권에 쏟아붓는 그간의 경제 성장 방식으로 대한민국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한 생태다.
이 때문에 대선후보들도 지방분권 강화를 한목소리로 약속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역분권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최대한의 지방자치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또한 “그동안 지방자치가 많이 발전했지만 지방으로 권한이 더욱 많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방은 지방 발전의 주체가 돼야 하고 중앙정부는 뒤에서 도와주는 시스템으로 더욱 확실하게 구축돼야 한다”고 전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경우 3호 공약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지방소득세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법인세 자치권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등 지방분권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정치권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와 행정 체계를 더 민주적이고 선진적으로 제도화하는 과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지방분권을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실제로 전직 국회의원 모임 헌정회는 각 후보들에게 공문을 보내 개헌에 담길 지방분권 추진 방향성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이러한 목소리에 발맞춰 구체적으로 개정된 헌법에 포함될 내용과 관련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 중 가장 기본은 대한민국을 정의하는 헌법 제1조에 지방분권 혹은 균형발전을 지향하는 국가임을 명시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헌법에 보장돼 있는 국민주권 개념과 함께 지역 차원의 주민 주권을 강조하기 위한 ‘주민자치권 보장’도 포함돼야 한다는 게 지역 시민사회의 요구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의 입법권과 재정권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게 지방분권의 첫걸음이 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입법권 중 외교, 국방 등 국가 안보 등과 관련된 사안 그리고 전국적 통일성이 필요한 내용은 중앙정부가 전담하며 이 외 지역별로 차별화가 필요한 자치 조직, 주민 복리와 직접 관계되는 주거, 교육 등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권한을 가지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재정권의 경우에는 국세 종류와 세율 등은 국가의 법률로 정하되 지자체의 세율과 세목, 징수 방법은 자치 법률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각 지역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여기다 현재의 국회의원 제도를 상하원제로 바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불균형 문제로 한쪽의 의견이 과다 반영되는 사태를 예방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추후 국민적 합의를 통해 그 방안은 구체화될 전망이지만 현재 인구 비례로 선출하는 하원 성격의 단원제를 보완, 지역별로 선출하는 상원을 둬 국민 모두의 목소리가 골고루 정책에 채택되는 안이 유력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처럼 6·3 대선을 앞두고 세부적인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그동안 반복돼 왔듯 각 당의 이해관계로 인해 지방분권과 관련한 논의가 또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력구조 등을 둘러싼 각 당의 다른 셈법으로 인해 지방분권에 대한 내용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헌법 개정 자체를 보다 손쉽게 하는 연성 개헌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제128조에 따르면,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되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에 의한 과반수의 찬성으로 확정된다. 이를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는 차원에서 헌법과 법률에 대한 국민발안제를 도입하거나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박재율 지방분권균형발전부산시민연대 대표는 “지역 소멸과 저출생 고령화의 시계는 가파르게 흘러가고 있어 지방분권 개헌은 대한민국 소멸 위기를 헤쳐나가는 시급한 과제이다”며 “이번 6·3 대통령 선거에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국가 운영 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들이 제시되고 활발하게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