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계획적인 도보 여행길은 2007년 조성된 ‘제주 올레’다. ‘올레’는 ‘집에서 거리까지 나가는 작은 길’을 뜻하는 제주방언이다. 올레에서 시작된 걷기 바람이 전국에 확산하면서 지리산둘레길, 치악산둘레길, 소백산자락길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부산의 ‘갈맷길’도 이 가운데 하나다. 갈맷길은 부산의 새인 ‘갈매기’와 ‘길’을 합성한 것이다. ‘갈매’는 순수 우리말로 ‘깊은 바다’라는 뜻도 있다.
부산시는 2009년 6월 전국 광역단체 최초로 ‘걷고 싶은 도시 부산 만들기’ 정책을 선보이며 갈맷길을 조성했다. 갈맷길은 현재 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로 운영된다. 기장군 임랑해수욕장에서 해운대구 문탠로드, 남구 오륙도, 영도구 태종대, 강서구 가덕도, 낙동강을 휘돌아 백양산과 금정산을 거쳐 기장으로 되돌아오는 도보 코스다. 부산 지형에 맞게 해안길, 숲길, 강변길, 도심길로 나뉜다. 수려한 경관이 어우러진 갈맷길은 그동안 걷기 운동 활성화와 시민 건강에 크게 기여했다.
갈맷길은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의 걷기 여행 실태 조사에서 해파랑길(부산~강원 고성), 제주 올레, 남파랑길(부산~전남 해남)에 이어 가장 많이 방문한 걷기 여행길 4위에 올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가·관광 보행길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셈이다. 부산시는 2022년에는 기존 갈맷길 코스 중에 개성 있는 테마를 갖추고, 대중교통과 연계성이 좋은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100km를 따로 구성해 선보였다. 욜로 갈맷길은 지난해 부산연구원이 발표한 부산 10대 히트상품 9위에 올랐다.
갈맷길이 2009년 조성 이후 16년 만에 전면 개편된다고 한다. 시가 이달부터 ‘갈맷길 기본계획 수립과 안내 체계 디자인 개선 용역’ 진행에 나선 것이다. 고령화, 건강 중심 걷기 문화 확산, 다양한 이용 계층 요구 등으로 갈맷길의 변화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존 노선 개편, 신규 코스 발굴, 대중교통 연계 강화, 안내 체계와 편의시설 디자인 개선 방안 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또 지역의 역사·문화·관광·자연 자원과 연결하고 숨겨진 보행 명소를 발굴하고, 코리아둘레길인 남파랑길, 해파랑길과 중첩되는 구간을 통합 정비한다고 한다. 갈맷길이 걷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이 공존하는 길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개편을 계기로 갈맷길이 일상 속 쉼과 만남의 공간이자 세계인이 찾는 명품 도보길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이 길에서 소통과 힐링의 시간을 가지며, 저마다 마음의 길을 활짝 열었으면 한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