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오늘은 부산의 오랜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되는 날이다. 시민의 염원이 깃든,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 그 문을 활짝 연다. 포도밭 형태의 2000석 규모 콘서트홀과 400석의 챔버홀이 함께 들어섰다. 정교한 음향 설계와 자동화 무대 시스템을 갖춘 클래식 음악에 최적화된 독립 공간이다. 콘서트홀 정중앙에는 4423개의 파이프와 64개의 스톱을 갖춘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자리했다. 비수도권 최초로 설치된 이 오르간은 ‘공연장의 심장’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아름다운 건축물의 탄생을 넘어, 부산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자존감과 예술계의 미래를 밝히는 등대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박래품인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도시 부산은 140년 만에 비로소 클래식 전용 극장을 갖게 되었다. 부산콘서트홀이 들어선 부산시민공원 일대는, 조선 시대에 연못과 저수지가 있던 풍요로운 땅이었다. 〈동래부지〉(1740년)에는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뒤편에 ‘신지언(新池堰)’이라는 제방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당시 동래부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터는 대한민국 근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도 품고 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제의 경제 침투가 본격화되면서 부산은 토지 수탈과 군사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일대는 경마장과 군사시설로 바뀌었다. 광복 후에는 주한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로 전용되며 시민의 발걸음은 오랜 시간 차단되었다. 2014년, 부산시는 이 땅을 ‘시민공원’으로 조성해 과거를 치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군이 남긴 폐기물과 오염 문제는 많은 논란을 낳아 ‘시민에게 온전히 돌아온 땅’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시민 염원 깃든 첫 클래식 전용 공간
지역 예술 지속 가능 성장 이정표로
운영 전략·제도 구축 공공성 높여야
이 역사적인 땅 위에 음악이 울리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세워졌다. 개관 공연 시리즈는 스타 연주자 중심의 화려한 라인업으로 꾸려졌고, 정명훈 예술감독이 이끄는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가 그 중심에 섰다. 환갑을 훌쩍 넘긴 부산시립교향악단은 개관 한 달여 전 단 한차례 시범 공연에 참여했을 뿐, 정작 공식 개관 무대의 주역이 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이어지는 공연 시리즈 또한 스타 연주자와 대형 기획사 중심으로 대부분 편성되었다. 상징적인 인물의 등장은 부산콘서트홀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울림은 개관의 흥분을 넘어, 이 공간의 구조와 운영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술감독이 지닌 상징성은 강력한 에너지로 큰 기대를 모은다. 다만, 이 공간이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나 유명 오케스트라만을 위한 전용 무대로 고정된다면, 결국 시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공연장이 지역 예술가들에게는 점점 낯선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예술은 특권이 아니라 권리’라는 명제 앞에서, 이 공간의 ‘공공성’과 ‘누구를 위한 무대인가’라는 질문은 결코 피할 수 없다. 공공성이 약해진 공간은 특정 권력이 좌우하는 전시형 무대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동시에 특정 인물과 대형 기획사에 의해 독점되는 또 하나의 임대형 플랫폼으로 굳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구조는 레퍼토리 구성과 운영 철학 전반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지역 예술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 세계적 스타를 불러 모으는 일회성 흥행에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지역 기반 예술이 뿌리내리는 장기적인 역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다. 부산콘서트홀은 여전히 ‘비어 있는 가마솥’이다. 새로운 예술의 시간에 이제 막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단순한 대관 시스템을 넘어, 공공성과 지역 예술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정표로 삼을 운영 전략과 제도 설계가 절실하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도 지역 우선 정책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기획 단계부터 지역 기반 예술가의 창작을 중심에 두고, 예술과 행정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일회성 기념 공연의 찬란함보다, 지역 예술계의 예술적 내공이 깊이 뿌리내릴 때 그 반향은 훨씬 더 오래, 더욱 깊게 울려 퍼질 것이다. 니체는 “위대한 것은 언제나 천천히 자란다”라고 했다. 진정한 개관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예술적 관계와 신뢰가 쌓이는 순간에 비로소 완성된다. 그 울림의 주체 또한 지역 예술 생태계 안에서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성장해야 한다.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 부산콘서트홀의 개관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곳이 예술을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숨 쉬며, 권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경쟁보다 공존으로 채워지길 바란다. 더불어 부산만의 리듬과 감각이 깃든 무대가 시민의 예술적 삶이 중심이 되는 ‘공연예술의 진짜 좌표’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이제 이곳에서 써 내려갈 새로운 부산 예술의 기억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