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자리에 앉아 상대방이 되는 것, 대화의 첫걸음 [마음 산책]

입력 : 2025-06-28 15:00:00 수정 : 2025-06-29 1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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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와의 갈등

책임 떠미는 아이에 큰 상처
집에서 마주치는 것도 고통

외로움·혼란스러움 쏟아내며
미숙한 방식의 소통 욕구 표현
동일시 통해 공감·이해해보기

상대방의 자리에 앉아 상대방이 되는 ‘동일시’를 통해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감정을 이해하며 공감하게 된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상대방의 자리에 앉아 상대방이 되는 ‘동일시’를 통해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감정을 이해하며 공감하게 된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Q)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뒤 홀로 자녀를 키우는 40대 싱글맘입니다. 이혼 당시엔 아빠를 찾지 않았던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부쩍 아빠를 찾습니다. 남편의 잘못으로 이혼을 했는데, 아이는 달리 생각하는 듯합니다. 엄마가 직장 생활에 얽매여 가정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아빠가 잘못된 선택을 했고 자신이 결국 아빠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입니다. 싱글맘이지만 남부럽지 않게 아이를 키우려 애써온 지난 날이 무위로 돌아가는 듯해 매일 마음이 무너집니다. 엄마에게 모든 책임을 떠미는 아이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때로는 고함을 지르기도 합니다. 이제는 집에서 아이와 마주치는 것도 힘겹습니다. 제 마음을 다스릴 방법은 있을까요? 아이와는 어떻게 대화를 풀어내야 할까요?


A)동일시(identification)라는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동일시는 상대방의 자리에 앉아 상대방이 되는 것입니다. 역지사지입니다. 동일시를 통해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감정을 이해하며 공감하게 됩니다. 이번 사례에서는 3개의 ‘자리’가 등장합니다. 엄마(아내)의 자리, 아빠(남편)의 자리 그리고 자녀의 자리입니다. 글의 내용은 엄마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자녀의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를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빠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전남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초점은 엄마-아이의 관계입니다.

먼저 엄마의 자리에 앉아 보겠습니다. 오래 전에 남편의 외도를 알았을 때 내가 받은 충격과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습니다. 용서하고 같이 살 건지 아니면 이혼할 건지 무수한 밤을 고민했고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마침내 이혼하기로 결심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아이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홀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나는 세상과 싸우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된 아이는 내가 지금까지 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주기는커녕 엄마를 비난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정말로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번에는 아이의 자리에 앉아 보겠습니다. 성장하는 동안 나는 외롭기도 했고 상처도 받았습니다. 일한다고 바쁜 엄마를 보면서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힘들고 또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는 것을 알기에 지친 엄마를 더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언제나 혼자 참고 견디려고 했습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내 마음은 여러가지로 혼란스럽습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매사 엄마에게 짜증을 냅니다. 엄마가 제일 편한 존재라서 가끔은 심한 말도 합니다. 그래 놓고 후회 합니다.

엄마에게는 아이의 말이 본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민 듯이 들릴 수 있지만 아이는 엄마와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어른스럽지 않고 미숙한 방식입니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는 지금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니까요. 어떤 상황에서, 어디에 초점을 두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달라집니다. ‘엄마가 직장 생활에 얽매여 가정을 소홀히 했다’는 말에 초점을 두면 억울한 마음에 화가 나겠지만 ‘자신이 결국 아빠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말에 초점을 둔다면 화보다는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연민의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자리의 개념에서 볼 때 엄마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자녀의 자리로 옮겨 앉을 수 있지만 아이는 엄마의 자리에 앉기 어렵습니다. 엄마는 아이였던 적이 있지만 아이는 어른이 되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자녀는 나중에 자기가 부모가 되었을 때 비로소 부모의 심정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너의 마음을 표현해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묵묵히 지켜보며 참고 기다리면 됩니다. 어머니 스스로 자신을 토닥이면서 힘든 시기를 견뎌내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이 또한 지나가게 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이메일(gomin119@busan.com)로 언제든 사연 보내주십시오. 접수된 사연 중 한 건을 선정해 매월 한차례 고민을 풀어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철권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철권 원장. 김철권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철권 원장.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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