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십리(鳴沙十里)는 은빛 모래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10리(약 4km)까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한에도 같은 이름의 해수욕장이 있지만, 북한에도 있다. 북한의 명사십리는 강원도 원산시 갈마반도 인근의 모래사장을 말한다. 광복 이전에는 대표적인 휴양지였다. 이곳이 위치한 원산 갈마 지역은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비견될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우리에게 원산은 지리적·전략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금강산과 인접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남한과의 철도망 연결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1년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이 개통됐다. 지금은 단절된 철로 하나만 복원하면 서울에서 동해안을 따라 원산까지 물류도, 사람도, 에너지망도 연결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원산 사랑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사회의도 이곳에서 개최했고, 수차례에 걸친 원산 일대 현지 지도는 그 집착의 강도를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고향이 원산 인근이고, 생모 고영희가 처음 북한 땅을 밟은 곳이 원산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원산 개발은 김정은 시대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1972년 김일성 주석이 원산을 ‘세계적인 항구문화휴양도시’로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다만 김정은 정권 들어서는 더 적극적으로 개발을 추진하며 원산을 ‘조선 동해의 진주’로 홍보하고 있다. 현재 원산 갈마지구에는 국제공항이 들어섰고, 인근에는 마식령 스키장도 조성되어 있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관광 시설을 갖춘 강원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가 최근 준공됐다. 이 정도 규모와 시설은 북한에서도 드문 사례다. 북한이 관광산업에 집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존 산업은 국제 제재로 마비된 반면, 관광은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닌데다 적은 비용으로 외화 수입이 가능한 유일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바로 이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해안가 콘도’를 언급하며 원산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관광은 ‘경계 없는 산업’이다. 원산이 ‘조선의 진주’가 되려면 북한 스스로 닫힌 문을 열어야 한다. 물론 한국 정부와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평화협정과 체제 보장 등 거시적인 틀 안에서 원산은 남북 경협의 실험장이자 가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금강산 관광으로 교류의 문을 열었던 기억이 있다. 단절의 시간 위에 쌓인 침묵을 걷어내고 다시 말을 걸어야 할 때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