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의 광장은 또다시 뜨거워졌다. 수많은 시민들이 한 손에 응원봉, 한 손엔 피켓을 들고 광장으로 모였고, 새로운 세계를 함께 꿈꿨다.
이듬해 4월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고, 6월엔 조기 대선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서 광장의 투쟁은 마침내 목표를 이룬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책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지금, 우리는 과연 광장의 혁명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정권교체를 넘어 ‘사회대개혁’을 이루자며 광장에서 외친 수많은 요구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실현될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진다.
‘광장의 역설’은 거대한 사회운동이 실제로 사회를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돌아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타임스’ ‘LA타임스’ 등에서 일하며 2010년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를 취재한 저자 빈센트 베빈스는 12개 나라에서 200명이 넘는 활동가, 시위 참여자, 정치인 등을 인터뷰하고 관련 문헌을 조사했다.
저자에 따르면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수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생겼다. 중국이 추진하는 범죄인인도법안에 반대하며 벌인 2019년 ‘황색운동’ 이후 홍콩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중국이 국가보안법을 도입하면서 민주인사들이 대거 체포되고 젊은이들이 망명했으며, 언론은 탄압받았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낸 ‘아랍의 봄’ 역시 실패했다.
저자는 자발적이고 수평적 구조를 지니면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2010년대 시위의 조직 방식, 특히 ‘수평주의’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는다. 1960년대를 휩쓴 신좌파 운동의 수평주의는 완전하게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한다. 이에 따른 2010년대 세계 사회운동은 기존 정치권력을 무너뜨리고 정치적 공백을 만드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지도자 없는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조직과 대표성을 거부하는 수평주의적 운동은 애초에 권력을 잡는 데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 책의 통찰은 한국 사회에도 유의미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의 2016년 촛불 시위가 보기 드문 성공의 경험이었다고 평가했지만, 한국어판 서문을 쓴 현 시점에는 다른 평가를 내린다. 촛불시위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성공을 거뒀지만, 시위가 지향했던 더 큰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악화일로의 불평등, 엘리트 중심의 권력, 부패, 무엇보다 책에서 깊이 있게 다룬 ‘대의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한국을 충분히 취재하지 못해 아쉬웠다면서 더 좋은 기회를 찾겠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가 임기를 마치는 2030년 우리 사회는 또다시 광장의 역설을 경험할까, 아니면 새로운 사회를 이뤄냈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게 될까. 무척 궁금해진다. 빈센트 베빈스 지음/박윤주 옮김/진실의힘/480쪽/2만 7000원.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