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당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법안들을 처리하는 데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10일에는 윤석열 정부에서 도입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법안이 민주당 주도로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AI 시대에 역행하는 졸속 입법”이라며 반발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이날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의 반발 속에 이런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했다. 민주당 간사인 문정복 의원은 “민주당은 이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 끝에 더는 늦출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면서 “교육부가 출구 전략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 (대안을) 가지고 오면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고 조정할 부분은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백승아 의원은 “AI교과서를 반대한 게 아니라 많은 돈과 예산, 노력이 들어갔음에도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교과서를 만들었기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훌륭한 교과서라면 왜 학생 접속률이 10%밖에 안 되고, 왜 현장 교사들이 사용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국민의힘 서지영 의원은 “교실 혁명을 후퇴시키는 것”이라며 “AI를 활용한 학습으로 전 세계 시장이 재편되는 상황인데도 교육 현장에서 선생님의 지휘와 감독하에 일어날 여러 목표를 우리 손으로 중단하는 것”이라고 반발했고, 김대식 의원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그동안 이렇게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온 정책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는 생각을 하니 참담하다”며 “AI교과서는 도심 지역보다 소외계층, 인구 소멸 지역, 도서·산간 지역에 평등하게 교육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AI 교과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첨단 AI 기능을 활용해 학생 개인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하기 위해 도입됐으며, 올해 1학기부터 초 3·4학년(영어·수학), 중 1·고 1(영어·수학·정보)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 교육부는 교사 연수, 기기 구입, 인프라 구축 등으로 지난해에만 5300억 원 넘는 예산을 이 사업에 투입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이 법률안이 최종 확정될 경우 학교 현장에서 대혼란이 우려된다”며 신중한 검토를 요청했으나 법안은 상임위를 통과했다.
앞서 이 법안은 민주당이 야당일 때 본회의를 통과됐으나 윤석열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국회 재표결을 거쳐 폐기된 바 있다. 민주당은 이 개정안을 비롯해 고교 등의 무상교육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 국비 지원 기한을 3년 연장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 등 윤석열 정부에서 재의 요구된 법안들을 재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23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이번 개정안을 통과시킬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