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다른 목소리 어우러지는 만남, 융합의 시작

입력 : 2025-07-15 18:06:41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

기후에너지부 신설 의미있는 시도
이질적 분야 교류 새로운 통찰 얻어
경청·함께 고민하는 자세 가장 중요
열린 마음과 대화로 성과 도출해야

다른 나라에서 학위를 받으며 가장 먼저 마주한 어려움 중 하나는, 낯선 문화를 단순히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몸에 밴 생활방식과는 사뭇 다른 문화 속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마다 작은 충돌이 일어났다. 공부에만 집중하면 될 줄 알았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전공을 가리지 않고 학생과 교수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건물 중앙의 넓은 공간에 모여 티타임을 가졌다. 커피나 차, 간단한 다과를 곁들이며 담소를 나누는 이 시간은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내게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티타임은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서로의 연구를 이야기하며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뜻밖의 소통의 장이 되어주었다.

이 시절, 내가 소속해 있던 연구실 건물에는 기후 과학자뿐 아니라 지진, 암석, 공룡 화석을 연구하는 사람들, 때로는 이론 물리학자들까지 찾아오곤 했다. 시간이 흘러 다른 연구자들과 대화가 익숙해졌고, 그들과 대화하며 같은 주제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하게 여겼던 개념이 낯설고 비논리적으로 느껴졌지만 그 과정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도 생겨났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나의 ‘상식’이란 것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도 알게 되었고, 내 전공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내가 하는 전공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공식적인 학회 발표나 기관이 주최하는 워크숍과 같은 자리를 제외하면, 내가 하고 있는 전문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일은 많이 없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관심사가 아닌 주제를 굳이 꺼내는 일이 오히려 배려심 없는 행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협업을 기본 조건으로 하는 연구 제안서를 작성할 때도 드러났다. 여러 연구 책임자들의 협력이 필수적인 과제의 경우, 의견을 활발히 교환하기보다는 전체 일을 합리적으로 나누고, 각자의 전문 분야를 믿고 맡기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이는 각 분야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문화로 이해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분업의 결과를 단순히 합쳐 만든 결과물은, 때때로 예상보다 덜 유기적이고 상호 연결성이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융합’이라는 단어가 과학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전문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되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질문을 주고받는 문화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티타임은 어쩌면 이런 대화와 이해의 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자연스러운 방법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매일 이어지는 편안한 만남은 공감과 신뢰를 쌓는 기반이 되었고, 연구에 대한 정보와 관점을 나누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단순한 사교의 장을 넘어, 융합적인 연구의 씨앗이 자라는 소통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새 정부 아래 한국에서도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 같은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융합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에너지부’의 신설은 신재생에너지와 기후변화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하나로 묶으려는 의미 있는 과제로 읽힌다. 그러나 조직을 단지 합친다고 해서 진정한 융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낯선 언어와 사고를 이해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 차이를 기꺼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비로소 융합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실의 작은 티타임이 보여주었듯이, 융합은 거창한 제도보다는 일상의 작은 대화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이뤄진 많은 과학의 혁신은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융합에서 비롯되었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는 리만 기하학이, 맨틀 대류 이론에는 유체역학이, 기후변동 연구에는 통계물리학의 브라운 운동 개념이 적용되었다. 이처럼 하나의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탐구 못지않게, 이질적인 학문 간의 연결과 교차는 새로운 통찰을 가능하게 해왔다.

새롭게 신설되는 기후에너지부는 기후 연구와 에너지 연구라는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는 융합의 장이 될 것이다. 융합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일이다. 융합의 출발점은 타인의 일을 내 일처럼 듣고, 그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필자가 처음 어색하고 낯설게 경험했던 티타임의 일상적인 대화가 떠오른다. 별다를 것 없던 그 시간이야말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를 넓히는 진짜 융합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도, 그런 자연스러움 속에서 조금 더 자주 마주 앉고, 서로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한다.

부산온나배너
영상제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