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집중의 폐해에서 의료 불균형이 예외일 수 없다. 지역 환자들이 거주 지역에서 진료를 받지 않고 굳이 상경해서 서울의 병원을 가는 추세가 꺾이지 않는 게 실례다. ‘서울 큰 병원’에 지역 환자가 몰리다 보니, 이들 병원 주변엔 환자용 고시텔과 환자촌까지 성업할 지경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로 원정 진료를 떠난 부산 환자는 2013년 4만 2634명이었는데 해마다 증가해 2023년 5만 7111명으로 34%나 늘었다. 특히 암과 같은 중증 환자 유출 증가세가 확연하다. 환자의 서울 쏠림 현상은 지역 소멸을 부추기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에 묵과해서 안 된다. 지역 의료를 강화하는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지난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 결과, 지방 환자가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이 연간 4조 6000억 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열악한 지역 의료 체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간 〈부산일보〉 취재진은 2013~2023년 건강보험공단 의료이용통계를 자체 분석해서 소위 서울 ‘빅 5’ 병원을 찾은 비수도권 환자가 지난해 100만 5973명이며, 이는 2013년에 비해 33.2%나 증가한 사실을 밝혔다. 이 기간 누적 원정 환자는 무려 935만 명이다. 6대 암환자의 경우 같은 기간 누적 120만 명이 서울행을 선택했다. 지역민의 의료 불안·불신이 드러나는 통계 수치다.
시간과 비용 부담을 무릅쓴 상경 행렬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수도권 집중화로 인적, 물적 자원이 서울의 큰 병원에 몰려 있어서다. 지역민들이 특히 중증 질환이나 원인 불명일 경우 서울 상급종합병원을 선택한다고 응답한 것을 비춰 보면, 지역 거점 의료기관과 국립대 병원의 진료 역량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인식이 읽힌다. 서울행 추세를 반전시키려면 의료진과 의료 시설 부족 그리고 신뢰도 저하라는 부정적 인식을 일소할 수 있는 지역 의료 개혁이 필수다. 3차 의료기관인 지역 거점 국립대 병원의 역량 강화를 중심으로 지역 완결적인 의료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은 지역 의료 체계에 대한 신뢰다.
최근 의대생 복귀 선언을 계기로 의정 갈등이 대화와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제 애초 의료개혁의 출발점이었던 지역의 공공·필수 의료체계 강화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부산에는 10여 곳의 2차 종합병원을 비롯해 중증·난치성 질환을 전담하는 3차 의료기관인 5곳의 대학병원이 있다. 정부의 ‘포괄 2차 종합병원 지원사업’ 등을 비롯해 기존 지역의 의료 자원 강화를 통해 서울과 동등한 수준의 신뢰를 얻게 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의정 갈등 와중에도 상경 추세가 꺾이지 않은 것을 허투루 봐선 안 된다. 신뢰받는 지역 의료 개혁만이 불필요한 서울행을 줄이고 국가적 낭비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