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K팝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가 악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과정을 그린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영화다. ‘케데헌’의 글로벌 열풍이 드디어 부산에 상륙했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케데헌’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을 맞아 ‘영화의 바다’ 부산을 찾은 관객과 만난다. 그 만남은 너무나 뜨겁고 역동적이다.
■ ‘케데헌’, BIFF까지 접수?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7일 개막해 오는 26일까지 열흘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전 세계 64개국의 공식 초청작 241편과 커뮤니티 비프 상영작까지 포함해 총 328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이 가운데 이색적인 관객 참여형 상영회가 눈길을 끈다. 바로 국내 최초로 ‘케데헌’ 싱어롱 상영회가 20일 오후 8시 동서대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 열리는 것이다. 공연 전용홀에서 열리는 만큼 원작의 사운드를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장점이다.
‘케데헌’은 K팝의 화려한 세계와 오컬트 장르를 결합해 전 세계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며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How It’s Done’ ‘Soda Pop’ ‘Golden’ ‘Your Idol’ 등 다채로운 넘버를 통해 전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성공 비결은 바로 음악이다. BBC도 “K팝은 이 영화의 심장이고,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초자연적인 무기가 되어 감동의 순간을 더 증폭시킨다”고 분석했다. 케데헌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이야기 몰입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풍성하게 만든다.
이번 싱어롱 상영회에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를 직접 따라 부른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 K팝을 절묘하게 융합한 영화의 음악적 매력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만끽할 수 있다. ‘케데헌’ 싱어롱 이벤트는 북미 지역에서 먼저 시작됐다. 넷플릭스는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극장에서 ‘케데헌 더 싱어롱’을 개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한국도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싱어롱 상영회의 열기를 이어가게 된 셈이다. ‘케데헌’을 만든 매기 강 감독도 지난 17일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 카펫을 밟았다.
■ 매일 새로 쓰는 역사
‘케데헌’은 매일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넷플릭스 콘텐츠 가운데 사상 최초로 누적 시청 수 3억 회를 돌파한 것이다.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에 따르면 6월 20일 공개된 ‘케데헌’의 누적 시청 수는 지난 14일 기준 3억 1420만 뷰를 기록했다. 이는 지금까지 공개된 넷플릭스의 모든 영화와 쇼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2위는 ‘오징어 게임 시즌1’의 2억 6520만 뷰다. 그뿐만 아니다. 케데헌의 OST ‘골든’(Golden)은 4주 연속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까지 석권하며 K팝 전성시대를 다시 열었다. 이는 2020년 12월 방탄소년단이 앨범 ‘비’(BE)와 타이틀곡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으로 나란히 두 개 차트 정상을 차지한 이후 약 5년 만에 일군 쾌거다.
■ 인기 요인은 무엇인가?
‘케데헌’은 단순히 K팝을 소재로 삼은 것을 넘어, 한국의 신화와 일상적인 문화 요소를 모든 장면에 진정성 있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케데헌은 서울을 배경으로 K팝과 아이돌 문화, 한국적 생활상을 세밀하게 담아냈다. 여기에 K팝의 화려한 시각적 요소와 음악을 스토리와 캐릭터에 완벽하게 결합했다. K팝이라는 장르와 초자연적 퇴마물의 성공적인 융합은 흥행의 핵심 동력이었다. 강력한 글로벌 K팝 팬덤을 바탕으로 작품 속 노래들이 현실의 음원 차트까지 석권하면서 ‘케데헌 신드롬’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케데헌의 성공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우정과 자기 수용과 같은 스토리의 보편성과 한국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이 조화를 이루며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K팝의 글로벌 인기, 배경이 된 서울의 아름다움, 음식·패션·굿즈 등 K라이프의 신선함을 친숙하면서 세련되게 전달했다. ‘케데헌’이 K브랜드가 월드클래스의 주류 문화로 자리 잡게 한 작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케데헌'을 연상시키는 기념품을 사기 위해 ‘오픈런’까지 벌어지고, 명동이나 북촌한옥마을 등 애니메이션 배경지에 ‘성지순례’를 오는 관광객도 많은 이유다. “한국 문화가 앞으로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유일한 길은 자신감 있게 우리 문화와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매기 강 감독의 작품 철학이 영화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화려한 빛 뒤에 남긴 과제는
‘케데헌’의 성공은 K컬처와 K콘텐츠의 경쟁력을 증명하는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제작한 곳은 소니픽처스이고, 투자와 배급을 맡고 지식재산권(IP)을 가져간 곳은 넷플릭스다. ‘케데헌’의 성공은 글로벌 자본과 제작 노하우, 플랫폼이 결합해 만든 성과다. 이를 보고 국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가 제작해서 흥행이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녹록지 않다. ‘케데헌’ 제작비만 약 1억 달러(약 1390억 원)에 달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한국 콘텐츠업계의 제작과 유통 여건은 열악하다. 글로벌 진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국내 시장만을 타깃으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영화를 만들기도 버거운 것이다. 국내 대표 OTT 업체인 티빙과 웨이브도 합병을 추진해 몸집을 불리려고 하지만,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그사이 전 세계 1위 OTT 넷플릭스는 자본력과 시장지배력을 더 키워 글로벌 시장 장악을 가속화하고 있다. 흥행 리스크와 제작비를 책임지는 대신 IP를 독점한다. 콘텐츠가 흥행하면 굿즈, 팝업스토어 등 파생 수익은 모두 넷플릭스 차지다. 하지만 국내 제작사들은 막대한 제작비를 지원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막강한 창구인 넷플릭스를 외면하기 어렵다. K콘텐츠 산업이 유통과 수익 구조에서 글로벌 플랫폼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콘텐츠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아도, 국내 제작사는 주도권과 재투자 여력을 상실하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가 고착화되면 넷플릭스 종속 현상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쉽지 않겠지만, 국내 OTT가 힘을 모아 몸집을 키우고, 넷플릭스와 경쟁할 만한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야 한다. 또 유망 콘텐츠 제작 프로젝트에 제작비를 공동으로 투입하고 IP를 공유하는 ‘IP 주권 펀드’ 조성도 필요하다. ‘케데헌’ 흥행 열풍 속에서 국회에서도 K콘텐츠 지원을 위한 법안을 내고 있다. 전통 문화적 요소를 기반으로 한 K콘텐츠를 지원하는 ‘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 개정안’과 ‘문화산업진흥기본법·콘텐츠산업진흥법·지역문화진흥법 개정안’이 여야에서 각각 발의됐다. 여야가 K콘텐츠 산업 육성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룬 만큼 법안 통과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K콘텐츠 산업을 시장 규모 300조 원, 문화수출 50조 원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체계적 대응이 절실한 때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