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능 못하는 야간 돌봄… “이중 삼중 대책” 대통령 지시 무색 [부산 화재 참사 100일]

입력 : 2025-10-01 1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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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교육청, 참사 이후 센터 감축 결정
까다로운 신청 방식에 이용률 떨어져
현장선 “현실 모르는 탁상행정” 비판
수요자 중심 서비스 구조로 전환돼야

지난 7월 2일 밤 부산 기장군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화재가 발생해 어린 자매 2명이 숨졌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 7월 2일 밤 부산 기장군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화재가 발생해 어린 자매 2명이 숨졌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홀로 남겨진 아이들이 숨지는 참사(부산일보 6월 25일 자 1·6면 등 보도) 발생 100일을 맞았지만, 정부가 참사 후속 대책으로 제시한 야간 돌봄 대책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이은 야간 아동 사망사고 이후 대통령까지 나서 “이중, 삼중의 아동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야간 돌봄 공백 정책은 부모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사실상 공회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부모 외면에 오히려 줄어든 센터

지난 6월 24일 새벽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초등생 2명이 숨졌다. 자매의 부모는 이날 새벽 일찍 청소 일을 나가 집을 비운 상태였다. 불과 8일 뒤인 지난 7월 2일 오후 11시께 기장군 기장읍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잠시 외출한 사이 두 자매가 숨졌다. 이후 각 기관은 야간 돌봄 인프라 홍보와 강화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야간 돌봄 시설의 이용 장벽은 낮아지지 않았고 이용이 없자 시설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1일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시교육청은 ‘24시간 긴급보살핌늘봄센터’를 29곳에서 16곳으로 내년 1월부터 줄인다. 참사 이후 야간 돌봄 강화에 나섰지만, 결국 센터 감축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까닭은 이용자 수 부족 때문이다. 실제 참사 이후인 지난 7~8월 오후 11시 이후 야간 이용자 수는 0명이었다. 전체 이용자 수도 7월 228명, 8월 242명이었다. 이는 올해 상반기 한 달에 평균 300여 명이 센터를 이용한 것과 비교해 오히려 줄어든 수치다.

시교육청은 지난 6월 참사 이후 홍보를 위해 ‘24시간 긴급보살핌늘봄센터’를 알리는 내용을 전 초등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통해 발송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두고 집을 비우는 불안한 부모들의 발걸음을 센터로 돌리진 못했다.

현장에서는 제도의 실효성이 부족해 이용률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시교육청 ‘24시간 긴급보살핌늘봄센터’는 온라인 예약의 경우 하루 전까지 부산시교육청 통합예약포털이나 늘봄학교서비스를 통해 신청해야 한다. 유선 예약의 경우 당일 4시간 전까지 해당 기관으로 전화 신청이 필수다. 긴급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당일 직전 유선 예약을 허용한다지만, 원칙적으로는 미리 신청하지 않고 방문하면 센터 이용이 불가능하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신청이 들어와야 돌봄자격증을 가진 기관 운영 실무원이 센터에 출근해 돌봄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사전 신청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참사 이후 긴급돌봄서비스 소득 기준 완화도 반쪽 개선에 그쳤다. 지난달부터 긴급돌봄서비스 첫 이용 시 소득 판정 없이 서비스 이용을 할 수 있도록 해 이용 장벽을 완화했지만, 이용 편의성을 개선하지 못했다.

서비스를 이용한 후에 소득 판정을 받고 소득 수준에 맞게 지급한 돈을 환급받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정작 서비스를 신청할 때는 여전히 미리 신청해야 한다. 단기 서비스는 4시간 전까지, 긴급돌봄서비스는 2시간 전까지 신청이 필요하다. 아이돌보미 매칭을 위한 최소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경대 허원빈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의 이혼이나 실직 등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자체가 이를 신속히 감지하고, 해당 가정에 돌봄 서비스 신청을 제안하는 등의 수요자 중심 구조로 돌봄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낯선 센터·아이돌보미 어떻게 믿나요”

정부의 참사 이후 대책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이유로는 실제 이용자인 부모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 기관이 급히 내놓은 대책은 부모들의 실제 수요와 동떨어져 외면받았다.

일례로 아이돌보미 서비스 이용 시 특정 아이돌보미를 지정하는 것이 제도상 불가능한데, 실제 아이를 맡기는 부모 입장에서는 매번 다른 돌보미가 온다는 것이 이용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관에서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와 실제 부모들이 원하는 서비스 사이엔 ‘미스 매치’가 계속되고 있다.

기관들이 우후죽순 쏟아내는 돌봄 대책에 부모들이 오히려 혼란을 느낀다는 지적도 있다. 참사 이후 부산시, 부산시교육청, 여성가족부는 물론 보건복지부 등 여러 기관이 대책을 냈으나 중복되는 성격의 사업이 많다. 기관 간에도 돌봄 사업을 하나로 묶어 안내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기관 간 이해관계가 달라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경성대 정규식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4시간 긴급보살핌늘봄센터를 도입할 당시 기존에 학부모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인 지역아동센터나 다함께돌봄센터 등과 유기적인 역할 분배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돌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학부모들의 기본 욕구를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게 정책을 구성해야 효율적인 돌봄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박수빈 기자 bysu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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