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발생 이틀 뒤인 지난달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추석 특집 녹화를 한 것과 관련해 정치권 공방이 격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4일 “위기 대응 골든타임을 허비한 국정 공백 참사”라고 공세를 펼쳤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부터 “화재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회의를 주재했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날 “공무원들이 밤새워 복구에 매달리던 바로 그 시각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고 떠든 사실이 드러났다”며 “담당 공무원이 끝내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고통 속에 있을 때 대통령은 예능 무대에 서 이미지 정치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참담함을 넘어 ‘국민 모독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추모 기간이라 예능 방영을 연기했다는 식으로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국가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한 일이 없다는 사실만 자인한 꼴이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 관심은 대통령 부부의 냉장고에 뭐가 들어있는지보다 ‘국가 위기 속에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는가’”라며 “이 대통령은 이제라도 솔직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민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예능 프로그램 녹화 촬영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국가 재난 상황인 지난달 28일 TV 예능 프로그램 녹화 촬영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던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대통령은 재난 수습 책임자인 행안부 장관을 이틀간 대면하지 않았다”며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법적 조치를 예고하며 ‘냉부해’ 문제 제기가 잘못된 것처럼 허위 브리핑을 했다. 국민 앞에서 촬영 시점을 끝까지 숨기려 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형사 고발 방침을 밝혔다.
이에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대통령 부부 방송 출연에 대한 비난은 과도한 정치 공세”라고 맞받아쳤다. 민주당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유엔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화재 대응 지시와 대책 마련에 즉각 착수하며 국민 안전과 민생을 최우선으로 챙겼다”며 “방송 출연은 국민과 더 가까이 소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고, 그 과정을 국민께 설명드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안을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삼는 국민의힘의 행태는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국정 발목잡기에 불과하다”며 “국민이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은 국정 운영의 성과와 민생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국민의힘이 신경 써야 할 것은 냉장고가 아니라 책임 있는 야당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민의힘이 이 대통령 행적에 대해 강하게 의혹을 제기하자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이 대통령의 동선을 공개했다. 이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을 마치고 미국에서 귀국한 직후부터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회의를 주재하는 등 쉬지 않고 대응을 지휘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 동선 전체 과정 등을 공개해 화재 책임론 확산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는 오는 5일 ‘추석 특집, K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 방송에 출연해 제철 식재료로 요리한 K푸드를 홍보할 예정이었다. 추석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K푸드의 매력을 알리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국가전산망 장애 담당 팀을 총괄하던 행정안전부 공무원이 지난 3일 숨지면서, 대통령실은 방송 방영 시기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이날 방영 연기를 방송사에 요청했다. 이에 JTBC는 “5일 일요일 방송 예정이던 ‘냉장고를 부탁해’ 추석 특집은 6일 월요일 밤 10시로 편성 변경됐다”고 밝혔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