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밤’ 밝힌 젊은 여성들이 묻는다… “오늘은 안녕하십니까?” [계엄 1년]

입력 : 2025-12-02 20:30:00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윤 탄핵 집회 나섰던 부산 3인

집회 단상 선 ‘술집 여자’ 김 씨
“지금 나는 민주주의 투쟁 덕분”
‘집회 여성 인터뷰’ 김세희 작가
“정권 교체로 문제 안 끝나”
‘대자보 작성’ 최유민 부산대생
“끊임없이 감시하고 참여해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김유진(가명) 씨가 발언하는 모습. 본인 제공 부산 서면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김유진(가명) 씨가 발언하는 모습. 본인 제공

12·3 비상계엄 이후 부산 청년 여성들은 가장 먼저 광장에 나와 끝까지 응원봉과 깃발을 흔들었다. 탄핵 집회는 2030 여성들의 주도로 평화적 민주 투쟁으로 거듭났다. 파도를 일으킨 3명의 여성을 〈부산일보〉 취재진이 만났다. 탄핵 집회 이후 약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묻는다.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십니까?”

■내 삶을 바꾼 탄핵

“저는 온천장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입니다.”

약 1년 전 20대 김유진(가명) 씨는 부산 서면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목소리는 당당했다. 김 씨는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저를 경멸하거나 손가락질하실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 그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자 이 자리에 용기 내어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72만 회를 기록하는 등 SNS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계엄은 김 씨에게 삶의 큰 전환점이 됐다. 부산 서면 집회 발언 영상을 본 한 시민이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연락을 해 왔다. 김 씨는 노래방 도우미 일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해 지난달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했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다.

김 씨는 “민주주의 투쟁이 없었다면 저는 아직도 경제적인 이유에 묶여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광장에 서면 어떤 말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김 씨는 답했다. “지금 혹시 다들 발 뻗고 주무시나요?”

지난해 12월 계엄 정국 당시 학우들의 규탄 집회 참여를 요청하는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대자보. PNU Socio 탄핵행동네트워크 제공 지난해 12월 계엄 정국 당시 학우들의 규탄 집회 참여를 요청하는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대자보. PNU Socio 탄핵행동네트워크 제공

■광장의 딸을 기억하자

김세희(31) 작가는 하루가 멀다하고 연제구의 집에서 서면 탄핵 집회를 찾았다. 집회 현장에는 유독 또래 여성들이 많았다. 결의에 찬 얼굴을 마주하며 김 작가는 집회에 참여한 30여 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지난 5월 책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김세희·양소영·최나현 지음)로 펴냈다.

김 작가가 부산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까닭은 그들의 ‘서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김 작가는 “여자들이 시위에 나와 사회의 불공정을 외치는 건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들은 꾸준히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라며 “차별에 맞서 목소리를 내며 SNS를 통해 함께한 경험이 만들어낸 연대를 ‘응원봉 부대’만으로는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정권 교체가 됐으니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바뀐 세상에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며 “광장에서 힘을 실어줬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포동 집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이 김세희 작가에게 주고 간 핫팩. 본인 제공 전포동 집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이 김세희 작가에게 주고 간 핫팩. 본인 제공

■눈을 떼지 않겠다

부산대에 재학 중인 최유민(22) 씨는 지난해 탄핵 정국에서 약 20명의 학우들과 함께 탄핵 집회 참여 모임을 만들었다. 그는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까지는 무엇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단체를 조직해 탄핵 집회에 참여했다.

당시 집회에 모인 친구들을 중심으로 ‘PNU Socio 탄핵행동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집회 참여에 그치지 않고 시국선언 일정을 공유하고 탄핵 정국과 관련한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뜻을 함께 하는 학우들을 더 모아 집회 참여를 요청하는 대자보를 작성해 교내 게시판에 붙이기도 했다.

굳건하고 정교하다고 배웠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은 최 씨가 민주주의를 새롭게 느끼는 계기가 됐다.

그는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시민들이 감시하고 참여해야 지킬 수 있는 존재”라며 “다시는 민주주의가 하룻밤에 한 개인의 발언으로 쉽게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사회 구성원으로서 눈을 떼지 않겠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금정산챌린지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