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중 심계신촌의 낡은 2층 건물이 주는 빈티지한 감성과 젊은 작가들의 예술성, 여유로움을 즐기기 위해 연중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타이중은 더 이상 ‘노잼 도시’가 아닙니다. ‘감성 시장’이 관광객 발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수도 타이베이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타이중은 대만 제2, 제3 도시다. 대만 중서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예술과 자연, 미식이 어우러진 여유로운 도시 문화를 자랑한다.
타이중의 인구는 2014년 270만 명에서 지난해 284만 5000명으로 늘었다. 최근 10년 동안 대만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 도시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관광객도 증가세를 보인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타이중은 ‘문화 사막’으로 불렸다. 우리로 치자면 대만의 대표적인 ‘노잼 도시’였던 셈이다. 타이베이나 가오슝에 비해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 시설 등 관광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여기에 도시가 크고 명소가 넓게 분산돼 있어 접근성마저 떨어졌다.
그랬던 타이중의 이미지가 최근 트렌디하고 매력적인 도시로 바뀌고 있다.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도 끊임없이 타이중을 찾는다. 그 인기의 중심에 로컬 브랜드 ‘심계신촌’이 있다. 타이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문화 창의 공간 ‘심계심촌’은 타이중의 ‘노잼’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심계신촌에서 만난 황징양 씨는 “친구들과 한 달에 1~2번 정도 이곳을 찾는다. 원래 타이중에는 이런 분위기를 가진 곳이 없었는데, 심계신촌이 생기고 나서 좀 더 젊고 감성적인 도시가 된 것 같다. 주말에 사람도 많이 오고 작은 가게들도 늘어서 주변이 훨씬 활기차졌다”고 말했다.
심계신촌은 1950년대 대만 정부 시대에 지어진 공무원 숙소 단지였다. 당시 타이중시 정부 회계와 감사 관련 부서였던 심계처(주계처) 직원들이 이곳에 거주했다. 대부분 2층 구조의 연립주택으로 공용 공간을 공유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건물이 노후화되고 공무원들이 이주하면서 유휴 공간으로 남았다.
빈집으로 방치됐던 심계신촌은 2010년대 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타이중시 정부가 숙소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심계신촌’으로 이름을 바꾸고 젊은 창작자들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작업 공간을 제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타이중 중흥대학교는 맞춤형 교육 등을 통해 창작자·상인들을 양성하고 민간은 경관 개선에 나서는 등 민관학 협업 구조를 만들었다.
심계신촌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2018년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이자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중흥대학교 조사 결과 2020년 이후 심계신촌 방문객 수는 연평균 250만 명 안팎으로 집계됐다. 연간 매출액은 2억 대만 달러, 한화 94억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겨우 5000㎡ 면적에 30여 개 점포로 구성된 상권치고는 그야말로 엄청난 방문객과 매출을 발생시킨 것이다.
여기에 매출이 잡히지 않는 플리마켓과 노점까지 포함하면 매출 규모는 3억 대만 달러, 한화 140억 원을 넘어설 것이란 추측마저 나온다.
7~8년째 심계신촌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조첸 씨는 “심계신촌은 지난 3년에서 5년 사이 타이중의 랜드마크가 됐다. 해외 관광객들도 많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상인들의 수익도 향상됐다. 매일 오는 사람도 굉장히 많아서 지역의 대표적인 감성 시장이자 관광지로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계신촌 성공은 타이중 전체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지역의 감성과 정체성을 담은 공간이 대폭 늘어났고, 이를 즐기려는 관광객 수요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타이중시 정부 감사실 직원 기숙사로 활용됐던 한 마을은 ‘광복신촌’이란 이름의 또 다른 감성 시장으로 탈바꿈해 도시재생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심계신촌과 탄생 배경은 비슷하지만 마을의 모습과 규모, 분위기가 다르고 특징도 구분된다. 시 외곽에 위치해 비교적 접근성이 떨어짐에도 연일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중이다.
군인 가족 숙소였던 한 마을은 ‘무지개마을’이란 이름의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철거 예정이었던 이 마을은 주민 황융푸 할아버지가 벽화를 그린 것이 계기가 돼 한순간에 운명이 뒤바뀌었다. 알록달록 무지개색과 독특한 캐릭터 벽화는 SNS 등을 타고 빠르게 번졌다. 마을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고 결국 시 정부가 보존을 결정했다.
‘공위안안과’와 ‘제4신용합작사’ 등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이들 감성 시장이 가진 예술성과 아기자기한 공예, 여유로움은 이제 타이중시를 대표하는 ‘브랜드’ 그 자체로 통하고 있다.
호챠싱 중흥대 교수는 “심계신촌은 낡은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면서도 젊은 세대의 창의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타이중만의 독특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심계신촌을 시작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명소가 많이 생겨났고 그 자체가 타이중의 로컬 크리에이터이자 로컬 브랜드가 됐다”고 설명했다. 타이중(대만)/글·사진=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