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6-04-10 09:00:00
재팬레일클럽의 ‘오미야게 과자 상자’ 언박싱 행사에 관심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글이 SNS에 올라왔다. 지난해 ‘빵타스틱 마켓(부산일보 2025년 7월 4일 자 14면 보도)’을 열어 부산 남천동에서 불기 시작한 빵 바람을 서울 성수동까지 몰고 간 빵타스틱 기획단이 올린 내용이었다. JR 동일본 회사가 운영하는 재팬레일클럽 오미야게 과자 상자는 해외 거주자만을 대상으로 매달 테마에 맞춰 일본 전역의 과자를 상자에 담아 보내주는 구독형 서비스였다. 연간 매출이 수십조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철도 기업이 겨우 과자 상자를 만들어서, 일본은 배제하고 해외로 서비스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지난달 30일 오후 7시 부산 수영구 남천동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에서 열린 언박싱 행사에 참여했다. 술도 아니고 과자 때문에 밤마실 나가는 게 얼마 만인가 싶었다.
지난달 30일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에서 재팬레일클럽의 ‘오미야게 과자 상자’ 언박싱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역과 전통이 상자 안에 가득히
니가타에서 만든 오미쿠지 센베이. JR 동일본 제공
빵타스틱 기획단이 준비한 지난 1~3월의 오미야게 과자 상자 가운데 1월 상자부터 공개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겨울의 풍미’라는 주제로 모두 9개의 선물이 들어 있었다. 병오년을 맞아 가나가와현에서 만든 붉은 말이 그려진 사탕이 먼저 눈에 띄었다. 가나가와현 가와사키 다이시라는 절 주변에는 사탕 가게가 많다. 이 절이 액운을 지운다는 소문이 퍼지며 이 지역 사탕 역시 액운을 자르는 사탕으로 알려져 있다. 입안에서 붉은 말 사탕이 녹으며 올해의 액운까지 같이 사라진 느낌이다.
두 번째는 니가타에서 만든 오미쿠지 센베이다. 오미쿠지는 일본의 절이나 신사에서 길흉을 점치는 제비뽑기다. 고소한 된장 맛 쌀과자 센베이 안에 제비뽑기가 한 장 들었다. 이날 오미쿠지에서 나온 ‘외출해서 돈 쓰지 마라’라는 운세는 올해 내내 명심할 생각이다. 눈이 많이 오는 니가타는 일본 최고의 쌀 품종 고시히카리의 본고장이다. 쌀 품질이 좋으니, 가공식품의 수준도 높을 수밖에 없다. 일본식 쌀과자 센베이를 만드는 기업들도 대부분 니가타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일본 전통 과자인 베코 앰버 사탕. JR 동일본 제공
세 번째 선물은 보석처럼 빛나는 베코 앰버 사탕이다. 앰버 사탕은 한천을 녹여 설탕과 섞은 뒤 굳혀 만든 일본 전통 과자다. 한 봉지 안에 각각 봄을 상징하는 벚꽃, 눈이 덮인 후지산, 오른발을 들고 있는 복 고양이 마네키네코, 달마 인형, 스모 선수 모양 사탕이 골고루 들었다. 장인들이 정성 들여 수작업으로 제작한 사탕이라 입에 넣기가 아깝다.
네 번째는 니가타의 눈 저장고에서 한 달간 숙성시킨 원두로 만든 유키무로 드립백 커피다. 니가타는 소설 <설국>의 배경이 될 만큼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다. 수백 톤 눈으로 채워진 눈 저장고는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 원두의 산패가 억제되고 신선함이 오래 간다. 눈 저장고에서 ‘스노 에이징(Snow Aging)’ 방식으로 숙성시키면 갓 볶은 원두의 날카로운 신맛이나 강한 쓴맛은 부드러워지고, 커피 본연의 단맛이 살아나고 바디감은 깊어진다. 눈 저장고에 들어가면 까칠한 사람조차 성숙해질지도 모르겠다. 니가타에 가보고 싶어진다.
다섯 번째로 ‘가나자와역 오뎅’이 들었다. 가나자와는 일본에서 일 인당 오뎅 소비량이 가장 많은 ‘오뎅의 성지’다. 또 이시카와현의 관문 가나자와역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중 하나로 꼽히는 명소다. 왜 하필 ‘가나자와역 오뎅’이라고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나라에서 어묵 하면 무조건 부산어묵인데, 어묵을 과자랑 한 데 묶어 선물 세트에 넣은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나마하게 감자스틱. JR 동일본 제공
여섯 번째 ‘테라푸드 구운 감자’는 튀기지 않고 구워 내는 특별한 공법으로 만든 감자칩이다. 일반 감자칩보다 지방 함량이 60% 적어 한 봉지를 다 먹어도 138칼로리에 불과하다. 살찔 걱정 없이 막 먹어도 되는 감자칩, 이런 거 좋다. 이 밖에도 연유 쿠키, 우유 모찌, 우유 푸딩이 들어 있다.
2월 오미야게 과자 상자는 히로시마의 명물 오노미치 라멘의 맛을 재현한 라멘칩이 인상적이었다. 3월 상자에 든 나마하게 감자스틱 패키지를 보고 나마하게를 찾아봤다. 나마하게는 섣달그믐날 밤에 게으름뱅이나 악한 사람을 혼내준다는 험상궂게 생긴 요괴다. 사람이든 과자든 외모만 보고 함부로 평가하면 곤란하다. 훈제한 단무지 맛이 나는 이부리갓코칩은 술안주로 그만일 것 같았다. 오미야게 과자 상자는 참 일본다운 선물이었다.
재팬레일클럽의 ‘오미야게 과자 상자’에는 일본 전역에서 엄선된 8~10가지의 귀한 과자들이 매달 담겨 있다.
■일본에 가고 싶고, 일본과 이어지고
재팬레일클럽 오미야게 과자 상자에는 일본 전역에서 엄선된 8~10가지의 귀한 과자들이 매달 담겨 있다. 과자 종류도 화과자, 양과자, 스낵 등 다양하다. 대부분이 일본 밖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지방에 찾아가서 유명 관광지를 방문해야 구할 수 있는 귀한 과자들이 상자에 담겨 있으니, 마치 일본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났다.
과자를 통해 일본의 사계절을 느낄 수 있게 기획되었다. 봄에는 딸기의 풍미가 가득한 디저트, 여름에는 상큼한 감귤 계열의 스낵, 가을에는 밤과 고구마 같은 제철 재료를 사용한 과자를 위주로 담는다. 과자 상자의 테마가 매달 달라지니 질릴 틈이 없다. 각 지역의 특산품과 현지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온 유명 과자를 제대로 선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3·6·12개월 단위로 구독할 수 있으며, 12개월 플랜의 경우 월정액 34.80달러다.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국가까지 무료 배송이다.
JR 동일본은 과자 해외 구독 서비스를 대체 왜 하는 걸까. 재팬레일클럽은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과자 구독, 여행 스토리, 각종 여행 상품을 통해 일본 여행을 유도하는 원스톱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월간 오미야게 과자 상자를 구독하면 잘 알려진 브랜드부터 소규모 독립 생산업체에 이르기까지 일본 현지 제조업체를 지원하게 된다. ‘도호쿠의 맛있는 과자’ 같이 지역에 특화된 테마도 포함되니, 일본의 잘 알려지지 않은 매력을 만날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사를 전공하고 교토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요시카와 아야코 씨가 이날 오미야게 과자 상자에 대한 해설을 맡아 줬다. 요시카와 씨는 “첫째는 외국인과 일본 각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이다. 외국인들은 잘 모르는 지역의 매력을 과자로 전달하는 것이다. 둘째는 단순한 일회성 일본 관광을 넘어서서 일본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오미야게 과자 상자를 선물로 받으면 일본에 가고 싶어지고, 일본에 다녀온 경험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예술문화를 공부한 오초량 김은희 매니저는 “일본은 오버투어리즘 해결을 중요시하고 있다. 도쿄, 오사카, 교토, 후쿠오카 외의 다른 지역도 재미있다는 사실을 철도를 이용해 알리고 있다. 또한 지역과 계절을 순환하면서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을 홍보하는 역할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의 재팬레일클럽 ‘오미야게 과자 상자’.
■부산 패키지, 같이 만들어 봐요
“코레일도 맨날 천안 호두과자만 팔지 말고, 지역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이런 시도를 해주면 좋겠다.” 지난해 외국인 철도 이용객은 처음으로 600만 명을 넘어섰다. 과거 외국인들이 주로 서울만 보고 돌아갔다면, 이젠 철도를 통해 지방까지 이동하는 시대이니 너무나도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이날 모인 카페, 빵집, 요리 스튜디오 대표 등 F&B 관계자 10여 명이 오미야게 과자 상자를 보고 느낀 다양한 소감이 이어졌다. “제철을 재해석하는 노력이 계속 있어야 해.” “제품을 단순히 그냥 모아 놓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스토리가, 기획이 진짜 중요해.”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을 끝까지 밀고가 제품화했다는 게 대단한 것 같다.”
지난 1월의 재팬레일클럽 ‘오미야게 과자 상자’. JR 동일본 제공
아틀리에 스미다 김태희 대표는 “서울은 연대라는 개념이 없지만 부산은 서울과 달라서 부산을 같이 띄워주는 문화가 있다. 부산의 재료를 활용해 부산의 유명 셰프들이 레시피 개발에 참여한 ‘부산 패키지’를 만들면 이것보다 반응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빵타스틱 마켓을 만든 시선커뮤니케이션 최윤형 대표도 “JR 동일본은 월간이지만 우리가 만약 부산 패키지를 만든다면 일 년에 한두 번, 혹은 절기에 한 번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가세했다.
참신하고 맛깔나는 아이디어도 쏟아졌다. 방송인 타일러가 만든 한글과자는 미국을 넘어 호주 시장에 진출하면서 글로벌 K푸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한글과자가 나왔으니 부산 사투리 과자가 나올 때도 되었다. 마를 이용한 마 과자를 만들어 사직 야구장에서 판매하면 어떨까. “마! 쌔리라!”
일본의 제과 업체 칼비는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감자칩을 자주 만든다. 후쿠오카 지역 한정으로 돈코츠라멘 맛 감자칩도 나왔다. 부산 돼지국밥이나 밀면칩은 어떨까. 부산이 가득 든, 부산 패키지 선물 상자가 기다려진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