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2026-06-01 20:30:00
“한국에선 이젠 자영업 안 할랍니다.”
50대 이 모 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난달 사하구에서 운영하던 프랜차이즈 식료품점의 문을 닫았다. 약 3년 전 프랜차이즈 김밥집을 폐업한 후 두 번째로 차린 가게였다. 남은 것은 빚뿐이다. 그는 “장사만 20년 했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한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이 장기화하면서 부산 자영업자들의 폐업(부산일보 4월 14일 자 1·2면 보도)이 잇따르지만, 폐업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폐업을 경험한 이들은 그 이후의 삶이 더 절망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씨는 가게를 정리하는 데만 1000만 원 이상을 썼다. 처음 김밥집 문을 닫을 땐 500만 원, 식료품점 폐업 땐 약 300만 원의 인테리어 철거 등 원상복구 비용이 들었다. 두 번의 폐업을 거치며 생긴 대출만 약 8000만 원이다.
현재 이 씨는 배달 일을 하며 한 달에 50만~100만 원씩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고 있다. 전업주부였던 아내도 생계를 위해 식당, 사무보조 등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 씨는 “두 번의 자영업 실패를 경험하며 주휴수당 등 사회 구조가 직장인들 위주로 짜여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요즘 대기업 성과급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고 말했다.
사하구에서 낚싯대 공장을 운영하던 50대 김 모 씨도 지난해 7월 폐업했다. 수입은 없는데 매달 월세 87만 원에 전기요금만 70만 원가량이 빠졌다.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도 결정적이었다. 부산시의 폐업 비용 지원금만으로는 부족했다. 김 씨는 400만 원을 지원받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이 들었다. 철거를 위해 고용한 사람들의 인건비와 밥값 등 나갈 돈이 계속 생겼다.
김 씨는 현재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소상공인 대출로 빌린 3000만 원은 지난달 만기가 도래해 개인대출로 돌려 연장했다. 김 씨는 “금리는 더 비싸졌지만 갚을 돈이 없으니 어쩌겠냐”며 “하루 종일 몸을 쓰는 식당 일을 하니 허리가 아프지만, 빚을 생각하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동래구 아파트 상가에서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운영하다 지난해 11월 폐업한 40대 유 모 씨의 상황도 비슷하다. 창업 당시 하루 매출 40만 원을 목표로 했으나 실제 매출은 20만~30만 원 수준이었고, 나중에는 10만 원 정도까지 떨어졌다. 매달 200만 원씩 적자가 났다.
폐업 후 유 씨 가족의 삶도 달라졌다. 어린 자녀 2명을 키우기 위해 유 씨의 아내까지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유 씨는 “600만~700만 원을 주고 장만한 커피머신은 팔리지도 않더라”며 “1억 4000만 원을 들여 창업했지만, 남은 건 8000만 원의 빚과 한숨밖에 없다”고 했다.
이처럼 자영업자들은 폐업 이후에도 대출과 생계 부담에 시달리고 있지만, 제도적 지원은 한계가 있다. 시는 폐업 점포 150개 사를 대상으로 보유자산, 시설 장치, 재고 물품 처분 방법 안내와 철거, 세무, 채무 컨설팅을 제공하는 ‘사업정리 컨설팅’을 진행한다. 100개 사를 대상으로 교육과 재취업 장려금 50만 원을 지급하는 ‘폐업자 재취업 지원’ 사업도 하고 있다.
그러나 폐업 이후 새 출발한 자영업자들의 삶은 사각지대다. 부산시 관계자는 “폐업하면 더 이상 소상공인으로 분류되지 않아 사후 관리나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폐업 자영업자들이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조차 없다. 특히 중장년층의 경우 소득이 높은 일자리에 재취업이 쉽지 않아 상당수가 식당 종업원이나 배달업 등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자영업 실패가 인생 실패로 번지지 않기 위해서는 촘촘한 사후관리와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은행 부산본부 관계자는 “폐업 이후의 채무조정 등 사회적 안전망 강화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