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DC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가진 ‘기내 간담회’에서 “우리 외교의 기본 근간은 한미동맹”이라고 밝혔다. 그 말대로 25일(현지 시간) 한미 정상의 첫 대좌는 현 정부의 한미 외교관계 첫 단추를 꿰는 의미를 넘어 5년 정권의 외교 성패를 가늠하는 최대 이벤트이기도 하다. 이는 역대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데뷔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4년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첫 상견례에서 ‘디스 맨’(This man, 이 사람)이라는 하대를 당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례는 최근까지도 회자되는 우리 외교사의 대표적인 ‘참사’다. 김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서도 “(그 말이) 매우 불쾌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클린턴 정부에서 추진한 북한과의 대화 성과를 전면 비판하며 대북 강경 정책을 펼쳤다. 대북 정책에 대한 한미 간 불협화음이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을 무시하는 외교 참사로 이어졌다.
반면 재임 중에도 “반미면 어떠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 임기 중 8차례의 회담을 가지면서 미 조야의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굵직한 외교적 성과를 낳는 반전을 이뤘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80여 일 만인 2003년 5월께 부시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고, 한미동맹 50주년을 기회로 삼아 한국과 미국의 ‘완전한 동반자 관계’ 발전에 공감대를 이뤘다. 특히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지지층의 강한 비판에도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을 수용하면서 한미동맹 공고화에 주력했고, 이런 노력은 우리 경제에 엄청난 성장 동력이 된 한미 FTA 체결의 밑바탕이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임기 54일 만에 부시 대통령과 최단기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우정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스토리 중 하나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초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본인이 직접 골프 카트를 운전하는 등 부시 대통령과의 친밀감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당시 21세기 전략 동맹 합의를 통해 한미동맹 강화를 거듭 내세웠다. 국내에서는 쇠고기 수입 파동 등에 따라 정권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부침이 심했지만, 적어도 대미 관계를 바탕으로 한 외교 무대에서 이 대통령의 ‘파워’는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집중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첫 회담을 가졌다. 박 전 대통령은 회담 일정 중 오바마 대통령과 통역도 없이 단 둘이 산책하는 등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60주년 공동선언을 채택,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 동맹에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격상하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조 바이든 대통령과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한미 정상 차원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확장 억제 운영 방안을 적시한 최초의 합의 문서이다. 윤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맞아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미국의 팝송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하면서 한미 관계를 한껏 끌어올렸다.
워싱턴DC=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