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曜野話

입력 : 1959-10-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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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都艶史(21)

朴容九 作

閔伯鄕 畵

外戚의 擡頭

문종(文宗)은 이자연(李子淵)의 딸 삼형제를 모조리 왕비로 삼았다고 하였거니와, 맏이인 인예순덕태후(仁睿順德太后)의 몸에서는 실로 십자이녀를 두었다.

문종이 돌아간 뒤에 그 아들이 왕위에 올랐으니 제십이대 순종(順宗)이다. 순종은 왕위에 오른 지 석달만에 돌아가고 그 아우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니 제십삼대 선종(宣宗)이다. 선종이 재위 십일년에 돌아가고 선종의 태자가 왕위에 올랐으니 제십사대 헌종(憲宗)이다.

헌종은 재위 일년에 돌아가니 그 뒤는 선종의 아우가 이었으니 제십오대 숙종(肅宗)이다.

즉 인예순덕태후의 몸에서 난 문종의 세 아들이 전후하여 왕위에 올랐으니 순종, 선종, 숙종이 그 사람이다.

순종의 비는 정의왕후(貞懿王后), 선희왕후김씨(宣禧王后金氏), 장경궁주이씨(長慶宮主李氏)이다.

정의왕후는 평양공 왕기(平壤公王基)의 딸이다. 평양공은 원혜태후의 몸에서 난 현종의 왕자이다. 그러니 순종과 정의왕후는 사촌오누이간이다.

선희왕후 김씨는 순종이 동궁 때에 동궁비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시아버지인 문종의 미움을 받아서 내쫓음을 받았고 그러기에 소생이 없었다고 한다.

장경궁주 이씨는 이자연의 손녀이며 저 유명한 이자겸(李資謙)의 누이였다.

그러니 순종과 장경궁주 이씨는 외사촌 오누이 사이이다. 장경궁주는 순종이 왕위에 올랐을때 비가 되었었다.

그러나 석달만에 순종이 돌아가자 혼자 있게 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궁노(宮奴)와 간통하였다. 이것이 발각되어 그 지위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선종의 비는 정신현비 이씨(貞信賢妃李氏), 사숙태후 이씨(思肅太后李氏), 원시궁주 이씨(元信宮主李氏)이다.

정신현비 이씨와 평장사(平章事) 이예(李預)의 딸로서 이자연의 손녀이다. 즉 선종과 정신현비 이씨와는 외사촌오누이 사이였다.

사숙현비 이씨는 공부상서(工部尙書) 이석(李碩)의 딸이었다. 이제 필자가 얼른 단정하기는 어렵거니와, 이석이 인주인(仁州人)이었다는 것과 이자연의 아들들과 같은 한자 이름이며 더우기 이름이 같은 머리혈(頁)이 붙는 자라든지에서 이자연의 아들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런 단정이 내린다면 이도 역시 정신현비 이씨와 같이 선종에게 있어서는 외사촌누이이다.

원신궁주 이씨는 평장사(平章事) 이정(李정)의 따로서 이자연의 손녀였다. 즉 원신궁조와 선종은 역시 외사촌 오누이간이었다.

선종은 외사촌누이를 셋이나 왕비로서 삼은 임금인 꼴이다.

신종의 아들인 현종은 왕위에 올랐을때 경우 열네 살이었고, 또 재위 일년만에 돌아가 채 왕비를 정하기 전이었던 모양으로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숙종의 비는 명의태후 유씨(明懿太后柳氏)로서 문하시중(門下侍中) 유홍(柳洪)의 딸이었다. 숙종은 여기에서 칠자사녀를 두었다.

문종은 여러 가지로 고려에 있어서의 훌륭한 임금으로 지목을 받고 있다. 모든 시설이 완비되고 하나의 나라로서 체계가 완성한 것을 대개 문종 때로 잡는다. 그러나 고려 중기에 있어서의 고질인 외척의 세력도 이때에 싹트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자연은 그의 세 딸이 왕비가 되었다. 그리고 외손자로서 왕위에 오른 사람이 셋이니 순종, 선종, 숙종이었다. 또한 손녀로서 왕비가 된 사람은 장경궁주 이씨, 정신현비 이씨, 사숙태후 이씨, 정신현비 이씨, 사숙태후 이씨, 원시궁주 이씨 등이다. 그러면서 이는 모두 중첩되고 복잡한 인척관계인 것이다.

여기에서 외척인 이씨의 세력이 커질 수밖에 없고 교만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고려는 원래 근친결혼이 성행해온 왕실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근친결혼은 왕가인 왕씨 집안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그것이 문종을지나서부터는 외척 즉 이자연의 집안을 중심한 근친결혼으로 변모하였다. 더구나 소박한 것에서 정략적인 것으로 변하면서 왕가의 힘은 줄어들고 외척이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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