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더 바빠질 것 같아요."
부산시립무용단의 무용수 김미란(32) 씨는 최근 몇년 간 작품 세계에 푹 빠져 있다. 빵을 먹다보면 "빵을 작품으로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작은 빵은 머릿속에서 점점 부풀어 올라 빵집만큼이나 커진다.
한 번은 심심풀이 삼아 컴퓨터로 고스톱을 하다 이것도 작품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2004년에 만든 '고스톱 첫번째 이야기-버림'이다. 고스톱을 칠 때 멧돼지(홍싸리)는 쓸모가 별로 없어 쉽게 버리는 패이다. 버려지고,또 버려지자 화가 난 주인공 멧돼지는 막판에 판을 뒤집어 버리는 '저력(猪力)'을 발휘한다.
김 씨는 올 한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다. 세어 보니 부산시립무용단 공연 외에도 4차례나 개인 안무 공연을 열었다. 지난 4월 '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에서 '버려짐-봉산탈춤에 형상화된 성'부터 시작해서,8월 댄스 시어터 '集'의 '진흙',9월 대전시립무용단 젊은 안무가 초청공연에서 '꽃을 꺾어 본 적이 있습니까'까지 쉴새없이 이어졌다. 이달에 열린 부산 버슴새예술단의 송년공연 '봄비처럼 세상을 어루만지다'는 벌써부터 내년 봄을 기약하는 예고편인 셈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쉽게 말한다. "이번에 한줄(공연 이력) 더 늘었데." 김 씨는 "너희는 대신 남편하고 자식이 있잖아"라며 대답한다. 이력이 하나 늘면 빚도 그만큼 늘어나는 게 무용판이다.
김 씨는 최근 부산대 미학전공 박사과정에 합격하며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춤을 출수록 부족한 점이 느껴져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른 장르는 이론적 토양이 탄탄한데 춤추는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아쉬웠다.
"춤평론도 해보고 싶습니다." 작품을 직접 해본 사람이 하는 평론은 다를 것 같다. 차범근의 월드컵 축구 해설과 다른 이들의 해설은 격에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용계에서도 서울과 지역의 차별은 존재한다.
"서울에서 만드는 작품들은 외국 작품들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작품을 보면 촌스럽다고 평가절하합니다. 나름대로의 지방색도 무시하고요." 김 씨는 이런 불합리한 점을 작품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깨버릴 작정이다. 시인의 감성과 건축가의 치밀함을 동시에 갖고 싶다는 욕심을 감추지 않는다.
"올 한 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더욱 노력해 작품과 공부,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겠습니다." 춤과 이론을 갖춘 무용수의 돼지꿈이 내년이면 더욱 영글 것 같다.
박종호기자 nl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