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작품] 부산시립무용단 김미란 단원 - 영화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입력 : 2010-07-31 16:19:00 수정 : 2010-08-02 08: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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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아름다운 향수 '아찔'



2007년 무용수뿐만이 아니라 안무자로서 작품 창작과 공연에 너무도 신이 나 있을 무렵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감독 톰 티크베어)라는 영화는 이전에 책으로 상상했던 그 이상의 화면들을 내 눈앞에 그려줬다. 섬세하고 암울한 영화 전체의 배경은 질퍽한 18세기 프랑스를 꾸밈없이 보여주었으며, 저주받은 그루누이의 태어남과 질기고 질긴 성장 과정들, 향수를 만들기 위해 저질러지는 차가운 살인들, 향수의 완성과 함께 온 처형, 그리고 그 처형대에서의 벌어지는 인간 본능의 모습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시장터에서의 죽음, 그의 삶을 차갑고 아름답게 표현해 내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향수 제조도 예술에 포함한다. 손으로도 눈으로도 느낄 수 없는 향은 인간의 후각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각인되는 신비로운 예술이다. 향을 이용한 아로마테라피 요법은 대체 의학 요법으로 사람의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감흥시킬 수 있으니 어찌 예술이 아니겠는가? 그루누이를 잔혹한 연쇄살인범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으나, 춤을 추고 만드는 작업을 하는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향수에 미친 천재 예술가 그루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도 오랫동안 그루누이에 대한 여러 질문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그루누이가 진정 향수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그루누이가 향수를 죽도록 사랑한 만큼 춤을 사랑하고 있는가? 천재적인 후각을 가졌던 그는 행복했을까?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향수를 가졌음에도 죽음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향수이지만 그루누이의 처형을 구경하러 온 군중들은 향수에 취해 난교를 벌이고, 굶주린 사람들은 향수를 온몸에 부어버린 그루누이에게 'My angel'을 부르짖으며 그의 온몸을 먹어치운다. 저마다 다른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가둬둔 욕망들이 향기처럼 새어나온 것은 아닐까? 내가 그의 향을 맡는다면 어떻게 될까?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진 않지만 춤꾼으로서 살아온 10년의 세월을 돌아보고 다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향기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로 인해 각인되는 기억은 영원하다. 춤 공연이 끝나면 춤은 허공에 흩어지지만 그 잔상이 영원한 것처럼. "좋은 향수는 영원하다"라는 피에르 프랑수아 파스칼 겔랑의 말처럼 비록 그루누이의 향수는 못 맡아 봤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영화일 것 같다.


※ '나는 이렇게 듣고, 보고, 읽어서 웃고 울었다'라는 작품이 있으면 원고지 4장 분량으로 적어 사진(관련자료, 필자)과 함께 munhwa@busan.com으로 보내주십시오. 전화번호 주소 주민등록번호 통장 계좌번호 명기. 문의 051-461-4181(부산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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