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명을 설명하는 핵심어 중 하나는 크리스트교이다. 로마제국 말 이래 적어도 프랑스혁명 때까지, 심지어는 현재까지도 서양인들의 심성을 지배해온 사고와 신념의 체계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 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는 로마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했는데, 어째서 그를 따르는 종교가 로마제국 말부터 득세하게 된 걸까? 또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로는, 크리스트교가 어떻게 오늘날 서유럽과 중유럽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정신적 지주로 군림하게 된 걸까?
크리스트교 승리의 과정을 이해하려면 수많은 계기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가령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은 로마인들이 크리스트교를 자유로이 믿을 수 있게 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제국 영토로 쳐들어온 게르만 민족이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줄곧 서유럽을 지배하게 될 새로운 주인이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계기가 필요하다.
1500년경에 그려진 '클로비스의 세례'(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소장)는 서유럽의 새로운 지배자인 게르만족과 크리스트교의 만남을 기리는 그림이다. 게르만 일족인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는 또 다른 게르만족인 알레마니족과의 싸움에서 패전에 직면하여, 승리를 거두면 크리스트교로 개종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마치 콘스탄티누스가 그랬듯이, 클로비스는 496년에 승리의 공훈을 예수에게 돌리며 프랑스 랭스의 주교 레미기우스로부터 크리스트교 세례를 받았다. 이후 프랑크 왕국이 여타 게르만족들을 압도하며 서유럽에서 중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클로비스의 개종은 일회적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서유럽 전체의 '크리스트교화'를 촉진하는 단초가 되었다.
나아가 클로비스의 개종은 서양 중세 정치와 종교의 두 지배세력, 즉 게르만 지배층과 크리스트교가 손을 잡는 천년왕국적 지배 구조의 첫 단추를 끼웠다. 실제로 클로비스가 세례를 받은 랭스 대성당은 역대 프랑스 왕들이 대관식을 올리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는데, 이는 크리스트교가 왕권과 얼마나 밀접하게 결합하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경일
경성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