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게 더 재밌지 않나요?" (인터뷰)

입력 : 2015-10-30 09:09:22 수정 : 2015-10-30 10: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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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스투데이 황성운 기자] 김유정. 잘 자란 아역배우의 대명사다. 또랑또랑한 눈은 보고만 있어도 '삼촌미소'를 짓게 한다. 연기력은 더할 나위 없다. 웬만한 성인 배우 이상이다. '이대로만 자라다오'라는 바람이 절로 생겨날 정도다. 

어느덧 김유정도 고등학생이다. 누군가의 아역과 온전한 자기 역할, 이 두 가지를 넘나들고 있다. 영화 '비밀'에서도 마찬가지다. 극 중 김유정은 10년 전 상처와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평범한 여고생 정현으로 분했다. 

항상 밝을 것만 같은 해맑은 소녀의 얼굴 너머에 내면 깊숙이 숨겨놓은 무언가가 때때로 표출되곤 한다. 제법 여자의 향기도 풍긴다. 특히 김유정은 이번 영화에서 자신을 똑 닮은 아역 연기자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아역과 성인, 그 중간쯤 어딘가에 서 있는 김유정을 만나 그녀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Q. 먼저, 그동안 누군가의 아역을 많이 했고, 지금도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역이 등장한다. 그 느낌이 궁금하다. 
김유정 : 처음에는 잘 못 느꼈다. 나와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어린 친구가 있다는 것을 인지 못 했다. 최유리라는 친구가 저와 굉장히 닮아 깜짝 놀라기도 했고, 그 친구가 연기를 잘해 걱정되기도 했다. 하하. 

Q.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유정 : 확 끌어당기는 게 있었다. 또 이 캐릭터를 통해 내 안에 있는 내면의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여기에 성동일 선배님이 아버지로 나온다는 얘기 듣고, '바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Q. 예전부터 성동일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김유정 : 그동안 같은 작품을 하긴 했는데 겹쳐서 촬영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하고 싶다고 하니까 우연히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에서도 김유정과 성동일은 함께 출연한다.) 영화가 무겁고, 어두운 소재라서 촬영장 분위기가 그런 거에 따라갈 수 있는 상황인데 성동일 선배님이 밝게 해주셨다.  

Q. 본인이 연기한 정현은 어떤 인물인 것 같다.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역할인데 어떤 심정을 품고 있었을지 궁금하다.  
김유정 : 그 부분을 가장 많이 생각했다. 어렸을 때의 감정을 어떻게 끌고 왔을지, 또 어떻게 버텨왔을지 말이다. 큰 아픔인데, 그걸 숨기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그릇을 가진 아이인가 싶기도 하고. 또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라서 그 당시에는 기억이 안 날수도 있지만, 차차 기억이 났을 것 같기도 하다. 그걸 숨겼던 이유는 양아버지에 대한 미움, 싫은 마음들도 있지만, 어쨌든 품고 키워줬다. 그런 두 가지의 마음이 같이 있다고 생각했다. 친아버지에 대해서도 원망스럽고 싫지만, 알 수 없는 끌림이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감정들이 많고, 왔다 갔다 하니까 어렵긴 했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내가 겪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같은 학생이고, 나이라서 어느 정도 같은 마인드로 생각할 수 있는 공감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Q. 영화 엔딩 부분에서 고등학생이 아닌 성인 정현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아역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그런 성인의 모습이 낯설었다. 
김유정 : 아버지가 출소했을 때 구두 신고, 어른 옷차림에 화장까지 굉장히 어색했죠. 하하. 나도 이제 나 혼자만의 힘이 있다, 아버지 이해할 수 있다고 먼저 다가가는 의미를 가진 신이다. 물론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촬영한 거라서 참…. 하하.   



Q. 정현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김유정 : 정현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 옆에서 이해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정현은 친아버지와 양아버지, 두 분에 대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걸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 느낌이었다. 그래서 떠나갈 때 내 일부를 떼어 가져가는 허전한 느낌이었다. 무섭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전 캐릭터는 밝고, 캔디 같았는데 이번에는 큰 사건을 겪으면서 아픔이 점점 커지고, 그걸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니까. 정현이도, 나도. 그러다 보니 끝나고 나서 떨쳐내는 게 조금 힘들었다. 

Q. 그럼 어떻게 떨쳐냈나. 자신만이 노하우가 있었나. 
김유정 : 없었다. 아직 그걸 모르기 때문에 무섭고 힘들다. 작품을 많이 해가면서 하나씩 알아가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많은 도움이 됐고, 깨달은 것도 많다. 

Q. 이번 작품을 위해 금연초를 피웠다는 말도 있던데. 
김유정 : 망설임은 없었다. 정현을 잘 표현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근데 개인적으로 금연초는 정현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 피는 것, 피는 것 다 찍었는데 통째로 편집됐더라. 

Q. 영화 줄거리 소개에도 나왔지만, 철웅(손호준)의 등장이 이들 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런데 만약 철웅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정현과 상원(성동일)의 관계는 어떻게 됐을까. 
김유정 : 음….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철웅이 등장하지 않으면 영화가 끝날 수 없으니까. 하하. 그런데 만약 나타나지 않았다면 계속 마음을 숨긴 채 똑같이 끌어갈 것 같다. 

Q. 손호준은 어떤 배우인가. 
김유정 : 동네 잘 생긴 친한 오빠 같은 느낌이다. 친근하고 잘해준다. 나중에 남친 생기면 꼭 허락받으라고. 친척 오빠처럼.  

Q. 연기 호흡에서는. 
김유정 : 호준 오빠는 촬영장에서 내내 그 감정을 유지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나는 '컷'하면 곧바로 돌아온다. 연기하는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해했다. 진짜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뭔가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고, 표정이 심각한 거다. 적응이 안 됐던 건 있다. 물론 나중에는 그 이유를 알았는데, 한동안 다가가지 못했다. 

Q. 임형준과 눈빛 오버랩도 인상적이었다. 묘하게 닮았더라. 
김유정 : 안 닮았는데 주위에서 계속 닮았다고 한다. 하하. 그 정도까지 오버랩이 될지 몰랐다. 그런 줄 알았으면 미리 이야기해서 맞췄을 텐데. 여하튼 그 덕을 봤던 것 같다. 관객들이 봤을 때 웃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딸이라는 가정하에 나온 거니까. 

Q. 박은경 이동하, 감독이 두 분이다. 디렉션 과정에서 혼란은 없었나. 
김유정 : 초반에는 디렉션을 많이 하다가 점점 관심을 안 가져주더라. 하하. 아마도 잘 맞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살짝 서운한 건 있었지만, 저를 믿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Q. 최근 드라마 '앵그리맘', 영화 '우아한 거짓말' 그리고 이번 작품까지, 어둡고 내적 변화가 있는 캐릭터를 연이어 해오고 있다. 
김유정 : 좋다. 어렵고 복잡한 캐릭터들이 연기할 때나 마주칠 때 배우는 게 많다. 그리고 복잡한 거 생각하고, 풀어내고, 고민한다는 자체가 재밌다. 굳이 그런 역할만 선택하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Q. '우아한 거짓말' 인터뷰 때 감정 표현을 확실하게 하는 편이라고 했다. 정현은 그런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김유정 : 비슷한 면도 많은 것 같다. 정현도 그렇고. 혼자 있을 때나 조용한 곳에 있을 때 차분해진다고 할까. 이 캐릭터를 연기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역할을 통해 그런 모습을 만나보고 싶은 것도 있다. 요즘은 정현이랑 가까운 것 같다. 지금은 차분하게, 편하게 있는 게 잘 맞는 것 같다. 

Q. 다만 친구들 만났을 때는 달라지고. 
김유정 : 새론이 만나면 옆에서 말릴 정도다. 저희만의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고, 친한 사람은 되게 웃기다고 한다. 또 새론이하곤 달라서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말 안 해도 통하는 마음이 있다. 

Q. 같은 또래 배우로서 고민 같은 것도 서로 이야기하나. 
김유정 : 작품, 연기 이야기는 해 본 적 없다. 학교생활이나 일상 이야기를 한다. 기사나 사진 뜨면 캡처해서 서로 보내주고. 연기나 작품에 대해서는 굳이 얘길 안 꺼내도 서로 아는 게 있다. 또 과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도 얘기를 안 하는 것 같다. 

Q. 그런데 실제 성인 연기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있을 텐데. 
김유정 : 없다. 일부러 안 하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스무 살 넘어서도 학생을 할 수 있는 거니까. 또 이미지 변신을 한다거나 오버를 하지 않고, 그때 얼굴과 나이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순간에 맡을 수 있는 역할, 경험할 수 있는 걸 충분히 하면서 보내는 게 행복하다.

Q. 그럼 지금 김유정의 고민은 무엇인가. 
김유정 : 학교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더 어려워진 것도 있고, 또 대학 진로 결정과 함께 노력하는 시기지 않나.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어떻게 다닐지, 대학교는 어떻게 할지.  

Q. 보통의 또래와는 다른 삶을 사는 건데, 이에 대한 후회는 없나. 
김유정 : '후회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끝없을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넘기는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그런 경험을 더 해보고 싶은 욕심이 더 큰 것 같다. 

Q. 어린 나이에 그런 콘트롤이 되나. 
김유정 : 시간이 지나고, 경험하는 게 하나씩 생길수록 잘 되더라. 완벽하게 되는 건 아닌데,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을 만큼은 된다.  

Q. 불과 1년 전에 만났는데, 갑자기 확 커버린 것 같다. 외모적인 성장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말이다. 
김유정 : 이전보다 생각이 더 많아졌고, 많이 자랐구나 싶다. 연기하면서 띠동갑 차이 나는 언니 오빠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잘 통한다. '내가 왜 이분들과 말이 통하지'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수록 친구들하고는 대화가 어려워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 슬프다. 일탈을 꿈꾸는 이유도 그것 때문인데, 많이 성숙해지고 배운 만큼 놓치고 가는 게 있다. 

Q. 뭔가 눈빛에도 사연이 가득해 보인다. 
김유정 : 굉장히 좋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거라서. 눈빛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가장 좋은 칭찬인 것 같다. 내가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더 노력해서 발전하고 싶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 예쁘다는 말도 좋은데, 그걸 생각하지 않고 연기에 더 집중하고, 캐릭터에 몰입할 때 가장 예쁘게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Q. 그렇다면 만족도는. 기존 이미지와 전복되는 게 있어서 대중들이 볼 때 신선하게 볼 것 같다. 스스로는 어떤지 궁금하다. 
김유정 : 점수로 따지자면 10점 만점 0.5점이다. 도전했다는 거에 0.5점 줄 수 있다.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영화를 봤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표현하고 싶었던 만큼은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로 표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한 게 많았다. 그런 게 너무 아쉽다. 

Q. '우아한 거짓말' 당시 얼굴에 '배우'라고 쓰여있으면 좋겠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이번 영화에서 조금 더 배우의 얼굴이 보인 것 같다.  
김유정 :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이번 영화를 보시고, 배우 김유정의 새로운 모습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제대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 또 아역 배우라는 큰 타이틀이 언젠가는 넘어갈 텐데, 지금 당장 떨쳐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사진=비에스투데이 강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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