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을 그렇게 사랑한다며...”
영화 ‘동주’의 이준익 감독이 인터뷰 중 가장 많이 던진 말이다. 그의 말처럼, 윤동주 시인은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다. 하지만 정작 윤동주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모르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로 윤동주의 벗이자 평생의 라이벌인 송몽규의 존재다. ‘동주’는 단지 윤동주에만 머무르지 않고, 송몽규과 함께 그 시대 청춘의 아픔을 드러낸다. 윤동주 시인을 가장 사랑한다면서 그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 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감독은 물론 대중 모두 마찬가지다.
Q. 제목이 왜 ‘동주’인가.
이준익 감독 : 창작자의 역할 중에 표상을 깨는 것도 필요하다. 윤동주라는 고유명사가 가진 표상이 있다. 범접할 수 없는 식민지 시대의 순수한 영혼, 부끄러움에 자기 고백을 진실하게 토로한 시인 등 그 표상의 이면에 있는 한 초라한 개인이 더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태도다. 굳이 ‘동주’라고 한 것은 29살에 죽었는데 친구처럼 다가갈 수 있는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게 있었다. 직감적으로 ‘동주’라는 제목으로 결정했다.
Q. 윤동주 영화인 줄 알고 봤더니 송몽규가 보였다.
이준익 감독 :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나는 속물적인 의도다. 관객의 예측을 벗어나되 기대를 저버리지 마라, 이게 제1법칙이다. 동주를 보러 왔는데 몽규가 나오니 예측이 빗나갔다. 그렇다고 기대를 저버린 건 아닌 것 같다. 상업 감독의 속물적 근성이 있다는 걸 고백한다. 그리고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반복되어온 관점의 연장 선상에 나온 결과물이 아니겠나 싶다. ‘황산벌’에서 계백과 유신이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전투에 굳이 ‘거시기’에 초점을 두려는 의도나 ‘왕의 남자’에서 굳이 광대 이야기를 부각하려는 의도와 비슷하다. 윤동주란 입구로 들어간 이야기 속에서 송몽규를 만나게 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동력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명패를 동주로 달고, 노크하고 들어가니 몽규가 있는, 그런 거다.
Q. 이 작품을 하기 전에 윤동주과 송몽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
이준익 감독 : 지금의 20대 만큼 몰랐다. 일본 도시샤 대학에 일부러 윤동주 시비를 보러 갔다. 그 시비 앞에 잠깐 있는 동안 일본이 죽인 시인인데, 일본에서 왜 기념비를 세우지라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정지용 시인의 ‘압천’의 배경인 교토의 압천을 걸으면서 윤동주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래서 자료를 찾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에 대해 죄스러움이 들었다. 고민 끝에 상업적 부담을 짊어지지 않는 조건으로 만드는 것만이 밀린 숙제를 해내는 것으로 생각해 저예산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Q. 왜 그동안 송몽규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이준익 감독 : 근현대사의 현주소라고 본다. 자생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식민지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그리고 가난과 궁핍함에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시대를 지난 70년 동안 이어온 가치관은 성장주의다. 그 성장주의의 가속도는 지금도 식지 않은 것 같다. 그럼 송몽규는 왜 소외됐느냐, 성장주의는 결과 우선주의다. 과정이 무시되고 결과와 성과만 추앙받는 시대인 거다. 50살이 넘어 윤동주를 자세히 보니, 송몽규가 왜 이렇게 커 보이는 지. 윤동주를 사랑한답시고 수능 교과서에서 붙잡아 두고 있는데, 그 시대나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Q. 분명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 중에 송몽규처럼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많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사람들을 차례로 조명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준익 감독 : 그럴 마음은 굴뚝같고,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 현실이 주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능력이 모자랄 것 같고. 너무 지나간 것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것도 반드시 옳은 것인가에 대한 염려도 있다. ‘동주’ 결과에 따라 어떤 기준일 설 것 같다.
Q. 여하튼 윤동주의 이야기를 송몽규를 통해 풀어낸다는 점이 신선하면서도 일종의 배신, 기분 좋은 배신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이준익 감독 : 그래서 저예산이다.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보러 왔는데 자꾸 몽규로 가는 불편한 전개가 상업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팔아먹고 싶은 영화를 찍고자 했던 게 아니다. 과도한 감상이나 어떤 상품화를 위한 기교나, 그걸 탈색해 버린 거다.
Q. 그런데 생각해보면 좀 더 넉넉한 자본으로 찍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소원’ ‘사도’의 연이은 흥행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 같다.
이준익 감독 : 당연히 그런 제안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일고의 고민도 없이 초지일관 저예산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저예산에 대한 동경이 개인적으로 있다. 상업영화 감독으로 활동해왔지만, 저예산 영화가 가진 미덕을 항상 부러워했다. 운이 좋게도, 신연식 감독하고 연이 됐다. 그래서 신연식 감독에게 저예산 영화로 찍을 수 있는 시나리오를 써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 전작인 ‘러시안 소설’을 보면, 문학적 소양이 충분히 드러나 있는 작가이기도 했다. 디테일한 작가로서의 재능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사실 문학적으로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라서 신연식 감독의 능력을 빌린 거다.
Q. 신연식 감독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
이준익 감독 : 역시 내게는 없는, 저예산 영화의 효율성이 극대화된 시나리오였다.
Q. 윤동주의 첫 영화화다. 그 무게감이 만만찮았을 것 같다.
이준익 감독 : 의외로 단세포다. 복잡한 것 같지만, 일을 굉장히 쉽게 한다. 때론 무대책이 대책이니까. 축구를 해도 드리블이 없이 냅다 질러놓고 쫓아가는 스타일이다. 인생이 그렇다. 또 감독은 사실 배우 뒤에 숨어 있는 존재다. 배우들한테 책임 전가를 한 셈이다. 하하.
Q. 어쨌든 영화다. 제아무리 윤동주 이야기라 한들 영화적 재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준익 감독 : 결국에는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의 본질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사도’가 90% 고증과 사실을 근거로, 그 안에서 두 인물 관계의 밀도로 승부했듯, ‘동주’ 역시 70% 사실에 근거해 동주와 몽규, 둘의 관계와 심리, 밀도로 드라마를 만들어 전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두 사람의 신념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동주와 몽규의 신념이 없었다면, 이건 영화로 만들 이유가 없었다. 시가 좋으면 시집을 사면되니까. 동주의 시는 도구일 뿐이다. 그럼 그 신념은 무엇이냐. 군국주의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취조하는 일본 고등 형사의 부당한 논리 속에 있는 모순이 낳은 부도덕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지적하고, 추궁한다. 그 신념을 70년 동안 잊고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표다. 70년 동안 군국주의의 모순과 부도덕성을 지적하고, 추궁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나 싶다. 그게 ‘동주’를 찍으려고 했던 동기이기도 하다. 더욱이 윤동주 시인은 알 수 없는 죽임을 당했다. 추궁하고 문책을 해야 하는 부분 아닌가. 우리는 그동안 윤동주 시인을 사랑한 게 아니라 윤동주 시인을 사랑하는 자기 마음을 사랑한 거다.
Q. 사실 윤동주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 속 내용을 허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어쩌면 그게 영화의 의도나 가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겠다.
이준익 감독 :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본다. 나도 몰랐으니까. 알고 나서 존재감이 훨씬 강하게 남기 때문에 몰라도 상관없다. 그래도 이 영화를 보러 온 10명 중의 한 명은 알지 않을까. 그 한 명이 9명한테 설명할 것 같다. 그런 디딤돌로 본다.
Q. 강하늘 박정민 캐스팅도 궁금하다. 주변의 추천이 선택한 전부는 아니었을 텐데.
이준익 감독 : 강하늘을 데뷔시킨 감독이 나다. 하하. (강하늘은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으로 스크린 데뷔했다.) 그래서 강하늘이 가지고 있는 본성과 사진 속 윤동주와의 유사점을 알고 있었다.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는 개봉하고 나면 평가될 부분이다. 박정민은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근데 송몽규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해야 한다는 게 기준이었다. 잘 아는 배우가 하면, 그 배우에 덮어씌워 진 송몽규가 된다. 물론 박정민은 저예산 영화에서 실력이 검증된 배우고, 마치 송몽규 캐스팅되려고 준비한 배우 같다. ‘동주’란 제목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할 정도로, 몽규의 존재감은 증명됐다.
Q. 강하늘 박정민 등 배우들의 부담감도 감독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었을 것 같다.
이준익 감독 : 감독은 배우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다. 그 배우를 캐스팅한 순간 그 배우가 극 중 인물이 되는 거다. 디렉션을 잘 안 주는 감독인데, 캐스팅된 순간 하늘이를 동주로 보고, 정민이를 몽규로 봤다. 마치 이준기가 뭔 짓을 해도 공길인 것처럼. 얼마나 편리하냐. 어려운 일은 쉽게 푸는 것이 가장 좋은 거로 생각한다. 하하.
Q. 강하늘에게 내레이션과 엔딩 노래까지 맡겼다. 강하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나 보다.
이준익 감독 : 맨 마지막에 들어가야 할 장면이 바로 연표다. 여기에 음악이 깔려야 하는데. 기왕이면 윤동주 송몽규의 마음을 담은 노래가 나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연식 감독에게 작사를 요청했다. 그리고 김신일 작곡가에게 의뢰해서 나오게 됐다. 노래 가사가 동주의 유골이 고향에 묻힐 때 감성을 표현한 거다. 당연히 당사자인 윤동주가 노래해야 했다. 유명 가수의 힘을 빌리는 건 맞지 않는다.
Q. ‘동주’를 비롯해 ‘암살’ ‘밀정’ ‘군함도’ ‘귀향’ 등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 같다.
이준익 감독 : 과거의 빈 지도를 채우는 무의식적인 집단 지성의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한때 우리는 조선왕조를 비난했다. 케케묵은 성리학, 썩어빠진 양반 등. 그러다가 초, 중기 위대했던 가치관을 복원하려는 발동이 20년 전 출판계를 채웠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다양한 문화와 가치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한 거다. 아직 퍼즐이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 중의 하나가 일제 강점기가 아닐까. 60년대 한국영화에서 활극 영화로 만주 봉천 장춘을 뛰어다니는 독립군 영화 많이 찍었다가 갑자기 두절됐다. ‘암살’이 큰 성과를 내고, 빈 지도를 채우는 퍼즐들이 파편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다. 아직 우리는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서 외면하고 숨기고 가리고 하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숨기고 가리면 역사의 순리 상 반드시 재현된다는 거다. 근데 그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반성하고, 개선하면 두 번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거다. 시험도 마찬가지다. 틀린 문제를 다시 보고, 개선하면 다시 안 틀리는데 그냥 넘어가면 또 틀리지 않나. 아시아에서 남은 밀린 숙제가 ‘동주’라는 입구를 통해서 살짝 엿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사진=강민지 기자, 루스이소니도스 제공
황성운 기자 jabo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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