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의 출연진들은 딜레마에 놓인다. 새로 기획된 드라마와는 달리 이미 정해진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 캐릭터의 성격은 살리되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내야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의 배우진들도 이에 해당한다. 더군다나 원작 웹툰이 열혈한 팬덤까지 확보된 인기 작품인만큼 그 무게는 더했을 것이다.
먼저 유정 역을 맡은 박해진은 캐스팅 전부터 자주 언급이 됐다. 달콤하면서도 섬뜩한 모습을 가진 유정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적임자 1순위로 꼽혔다. 예상은 적중했다. 섬세한 감정선을 표정으로 그려내야 했던 박해진은 극 중 홍설(김고은)에게는 다정한 남자친구로, 그 외의 인물에게는 누구보다 냉철한 모습으로 유정의 역할을 십분 소화해냈다.
반면 김고은의 경우 캐스팅 단계부터 논란이 많았다. 원작 웹툰 속 홍설과의 싱크로율이 낮다는 이유로 '치어머니('치인트'의 마니아 층을 이르는 말)'들의 반대 여론이 거셌다. 그러나 김고은은 모든 논란을 실력으로 덮었다. 순수하고도 당찬 여대생 홍설 역을 실감나게 표현해 시청자들의 우려를 보기좋게 뒤집은 것. 드라마가 종영된 시점에서 김고은과 홍설은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들 정도다.
극 중 유정의 친구이자 홍설을 짝사랑한 백인호 역으로 분한 서강준은 '만찢남'으로 불리며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했다. 겉으로는 껄렁껄렁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속은 누구보다 깊은 백인호를 재현했다는 평. 특히 촬영장에서 즉석으로 진행됐던 현장 인기투표에서 만장일치 1위로 꼽히며 '백타민'(백인호+비타민)으로 통할 정도로 높은 연기 열정을 가지고 드라마에 임했다.
이어 이성경의 경우 많은 부침을 겪었다. 그녀가 연기한 백인하 역은 백인호의 누나로 누구보다 까탈스러운 여성이다. 본능에 충실하며 할 말은 해야하고 화가나면 폭발해야 한다. 화끈하다면 화끈하지만 한 번 돌면 누구도 통제하기 힘든 트러블 메이커. 시청자들은 극 초반 이성경의 과장된 연기가 보기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15회부터 달라졌다. 모든 것을 잃고 이성이 나간 연기를 해야했던 이성경은 광기어린 연기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자신을 둘러싼 연기력 논란을 가장 백인하스러운 연기로 정면 돌파에 성공한 것이다.
또 주연배우들의 더딘 러브라인과 달리 시원시원한 방식으로 사랑의 결실을 맺은 권은택(남주혁)과 장보라(박민지)는 '치즈인더트랩'에서 가장 달콤한 커플이다. 남주혁은 극 중 보라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오빠 같은 연하남 은택을 연기해 여심을 자극했다. 장보라로 분한 박민지는 극 내내 홍설 곁을 지켜주는 친구이자, 은택과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순수한 여대생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표현했다.
이 밖에도 상철 선배로 분한 문지윤과 손민수 역을 맡은 윤지원의 감초 연기도 빛을 발했다. 문지윤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전형적인 소인배의 모습을 보이는 복학생 상철 역할을 맡아, 극 내내 갈등을 일으키는 '진상'을 선보였다. 윤지원은 극 중 홍설의 모든 것을 따라하며 자존감도 없고 뭘 해도 밉상인 손민수 역을 맡아 '암 유발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사진='치즈인더트랩' 방송 캡처
김두연 기자 myajk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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