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이야기] 겉도는 '입양특례법' 외국에선 어떻게 하나
입력 : 2016-05-08 19:03:00 수정 : 2016-05-10 16:01:32
'익명 출산' 허용하되 신원 관리로 생모 찾을 길 열어둬
인제대학교 국제교육원 해외 입양인 교육과정에 참가한 해외 입양인들이 진해벚꽃축제에 참석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최대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2011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됐고, 2012년 8월 법이 시행되면서 입양 과정은 투명해졌다. 입양아동의 인권을 강화하기 위해 2013년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에 가입한 이후 비밀 입양은 더욱 힘들어졌다. 헤이그 협약은 아동이 되도록이면 태어난 가정에서 자라도록 하고, 안 되면 국내 입양을 우선으로 추진하며, 피치 못할 경우만 해외 입양을 하되, 국가가 모든 과정을 감독하고 책임지도록 한다. 한마디로 개정된 입양특례법과 헤이그 협약 모두 입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국내 입양을 강조한다.
■여전한 해외 입양인의 아픔
해외 입양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입양인의 '친부모를 알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거다.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에서 해외 입양인이 원하면 입양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입양정보공개청구' 제도를 운용한다. 가족 찾기를 원하는 입양인을 위해 중앙입양원이 친부모와 연락을 하고, 친부모가 동의하면 상봉을 추진하는 식이다.
2011년 개정 '투명성' 확보 불구
국내 입양 활성화엔 되레 걸림돌
출생 신고·숙려기간 의무화도
취지 좋지만 부작용 더 많아
독일·체코선 '비밀 출산' 가능
"까다로운 입양절차 간소화 필요"
따라서 해외 입양인들은 입양 당시부터 투명하게 입양인과 친부모의 정보가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해외 입양인이 친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DNA 테스트를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모임(TRACK)'의 대표인 제인 정 트렌카(44·정경아) 씨는 부산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현재 민간단체가 하고 있다"며 "전국 보건소에서 해외 입양인들이 DNA 테스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트렌카 씨가 일하는 해외 입양인 보호단체 '뿌리의 집(KoRoot·02-3210-2451~2)'은 지난달부터 한국계 혼혈입양인 모임 '325KAMRA'의 지원으로 한국에서 아동을 입양 보낸 가족들을 대상으로 DNA 테스트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 이 단체는 이미 한국계 해외 입양인 1천 명 이상의 DNA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60명 정도가 DNA 테스트를 받았고, 일치하는 정보가 있는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트렌카 씨는 "국내 입양이 10년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정부의 입양 정책은 큰 실패라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미혼모의 양육비 지원을 늘리는 등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자라도록 최대한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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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복을 입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모습. 인제대 국제교육원 제공 |
■가족관계등록법 개정 시급
현행 입양특례법은 이전에 비해 크게 두 가지가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지자체에 입양 서류만 신고하면 됐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가정법원에서 입양 허가를 받아야 한다. 예전에는 출산을 알리고 싶지 않은 친모들은 아이를 고아 호적에 올리는 방식으로 입양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법 개정 이후 입양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아동의 출생 신고가 필수가 됐다. 또 다른 변화는 친부모가 아동을 입양 보내기 전에 필수적으로 7일간의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하는 '입양숙려제'의 실시다. 두 제도 모두 취지는 좋지만, 부작용을 낳고 있다.
아동이 합법적으로 입양이 완료되면 친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자녀 기록이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아동이 장애가 있어 오랫동안 입양되지 않거나, 입양 이후 파양될 경우 계속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이 남는다. 10대와 20대 초반 미혼모들은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출생 신고를 하고 입양을 보내는 대신, '베이비 박스'에 유기하거나 때로는 '개인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아기를 거래하기도 한다. 또 숙려 기간 동안 아기 보호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예도 있다.
입양 기관 역시 입양특례법 이후 입양 추진이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대한사회복지회 부산지부 박성희 지부장은 "입양특례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매년 부산지부에서 50~55건의 입양이 성사됐지만, 개정 이후 2013년과 2014년 모두 25건으로 줄었다. 그나마 법원의 허가 속도가 빨라져 지난해 34건으로 조금 늘었지만, 여전히 예전만큼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양특례법의 재개정이 힘들다면 가족관계 등록에 관한 법률이라도 개정해서 출생 신고를 하더라도 법원과 입양기관 제출용 서류에만 아동이 나타나도록 하는 등 입양을 보내려는 친부모가 '비밀 출산을 할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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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어머니를 만난 덴마크 입양인 나자 씨. 인제대 국제교육원 제공 |
■외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개정된 입양특례법 아래에서는 입양인의 '친부모를 알 권리'와 친부모의 '비밀 출산을 할 권리'가 충돌한다. 입양인의 알 권리는 강화됐지만, 친부모의 비밀 출산 권리는 사라진 것이다. 유럽 일부 국가는 친부모의 '비밀 출산을 할 권리'를 보장해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영아유기 안전장치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엄주희 연세대 법학연구원·명지전문대 겸임교수는 "독일과 체코의 사례처럼 '베이비 박스'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형사적 처벌을 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독일처럼 공공의료기관에서 익명 출산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중앙입양원에서 생모의 신원을 관리하는 방식의 특별법 발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독일은 익명출산제도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공공의료기관에 100개 이상의 '베이비 박스'가 설치돼 있다. 익명 출산을 하면 자녀의 출생기록부에 친모의 가명만 기록된다. 자녀가 16세가 될 때까지 친모의 신원은 중앙기관에 밀봉돼 보관되고, 입양 아동은 16세 이후 친모의 신원을 조회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친모는 자녀가 15세가 됐을 때 자녀의 정보 열람을 반대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가정법원의 결정을 따른다. 체코의 경우 비밀 출산을 허용하고 있다. 18세 이상 체코 국적을 가진 성인이라면 비밀 출산을 요청할 수 있고, 아동의 권리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결정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입양의 활성화를 위해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오히려 국내 입양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관련 법의 시급한 개정을 촉구했다. 고신대 김향은(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입양을 생각하는 많은 부부가 까다로운 입양 절차 탓에 포기하지 않도록 입양 허가의 법적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입양 부모의 선발 조건이나 자격 기준을 원칙적으로만 강화하는 것은 잠재적인 입양 가능 인구의 범위를 옥죄는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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