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 샨텔 씨 이야기 "가야산에 저를 두고 간 어머니를 찾습니다"

입력 : 2016-05-08 19:00:32 수정 : 2016-05-10 1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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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 혈육 마거릿 씨 기적적으로 찾았지만…

샨텔 다머 씨가 지난 6일 본보를 방문해 최근 자신과 혈연관계가 밝혀진 마거릿(한국명 고남미) 씨의 입양 서류를 가리키며 입양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샨텔 다머(Chantale Dahmer) 입니다.

1982년 12월 23일 부산 부산진구 가야1동 가야산에 있는 작은 사찰인 가야사 앞에서 발견됐습니다. 그래서 진짜 제 생일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발견된 날이 생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저는 태어난 지 2주도 안 된 신생아였다고 하더군요. 발견했을 때 제가 누구인지 추정할 수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적은 쪽지조차 없었다고 하네요. 이후 부산에 있는 보육원(해운대구 성모보육원)에서 지냈고요, 1986년 8월에 캐나다로 입양됐습니다.

"트라우마로 비행기 타면 눈물 난다는 샨텔 씨
한국에 있을 친부모 찾기 시작한 지 13년째,
수 차례 인터뷰와 제보에도 결실 못 맺었네요

하지만 다시 캐나다로 돌아갈 시간이 됐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제발 용기 내 연락 주세요"


캐나다로 입양되기 전 6개월 동안 서울에서 위탁 어머니랑 살았다고 합니다. 어렴풋한 기억이 있습니다. 바닥에 누워 잤던 일이나, 집 안 소파 같은 것들 말이죠.

후에 양부모가 된 양아버지가 저를 데리러 왔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양아버지가 묵었던 호텔도 생각나고, 같이 비행기를 탔던 일도 떠오릅니다.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로 돌아갈 때면 영원히 한국을 떠나는 것 같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곤 합니다.

캐나다에서의 삶은 좋았습니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어머니와 캐나다인 아버지가 저를 입양했습니다.

저는 토론토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워털루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는데요, 저는 그들의 유일한 자녀였습니다.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하게 해 준 좋은 부모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말이죠, 영어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저는 항상 친부모님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설명하기 어려운데요, '나는 누구지,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같은 의문을 항상 품어 왔습니다.

고등학생이 됐을 때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나 이민 온 한국인 친구와 만나면서 한국에 대해 더 궁금해졌습니다. 2002년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부산을 방문했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저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에 왔고,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친부모님 찾기가 시작됐죠. 

샨텔 씨를 가야사 앞에서 발견한 이후 보육원이 작성한 서류. '원영신'은 가명으로 샨텔 씨는 한국 이름이 없다. 샨텔 제공
부산일보에도 이메일을 수차례 보내고 인터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유용한 제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단서를 찾을 때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친엄마로 추정되는 사람이 부산의 계성여상에 다녔을지도 모른다는 제보를 받고 직접 가서 인명부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유력한 사람을 찾은 적도 있습니다. 연락처를 알게 돼 한참을 통화했지만, 알고 보니 그분은 딸이 아닌 아들을 낳자마자 입양을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 번은 친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이 경남 하동에 산다고 해서 친구와 함께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부산에 살았던 시기나 아이를 낳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가 일치해서 '아버지일지도 몰라' 하며 기대가 컸습니다. 그는 동네에서도 난봉꾼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친부모를 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그분 어머니(만약 맞았다면 제 할머니죠)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DNA 테스트를 했는데 결과는 불일치로 나왔습니다. 솔직히 실망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이후로도 계속 친부모 찾기에 몰두했습니다.

돌아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2010년부터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2년 동안 영어 강사를 했고요,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 라이어슨대학에서 언론학 석사를 땄습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는 서울에서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따져 보니 벌써 한국에서 4년이나 살았더군요. 한국에서 사는 것은 좋지만,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인 방송 뉴스 PD가 되기 위해 9월쯤 캐나다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아직 친부모님을 찾지 못했는데 캐나다로 떠날 날짜는 다가오고, 마음이 초조합니다.

친부모님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아마도 힘든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딘가에 있을 엄마 아빠, 정말 보고 싶습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서 연락해 주실래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랑을 담아, 샨텔 드림.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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