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됐다, 뒤늦게 재회한 쌍둥이 사만다 푸터먼(왼쪽) 씨와 아나이스 보르디에 씨. 부산일보DB한국에서 태어나 공식적으로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의 숫자는 16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역사상 한 국가에서 자국 아동을 해외로 입양을 보낸 것으로는 최다이다.
한국인의 해외 입양은 한국 전쟁 직후인 1955년, 미국 오리건 주 출신 미국인 사업가 해리 홀트 씨가 한국에서 고아·혼혈아 등 8명을 입양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홀트아동복지회가 세워졌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들은 여러 입양기관을 통해 미국, 스웨덴, 프랑스 등 14개 이상 국가로 입양됐다.
1955년 美 홀트 씨 첫 입양
해외 입양인 16만 명 넘어
재외동포와 같은 F-4 비자
한국에서 거주·근무 가능
입양인으로 살아가는 고민
영화·애니메이션 소재로
1950년대에는 전쟁고아나 한국전쟁 참전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혼혈아들이 해외로 입양됐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가난한 10대 미혼모들이 늘었고, 해외입양인 숫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에는 매년 9천 명 이상의 한국인이 해외로 입양됐을 정도다.
1990년대 들어 해외입양인은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해외입양인연대(G.O.A.L) 등 해외입양인 단체의 노력으로, 해외입양인도 재외동포와 똑같이 한국에서 거주하고 일할 수 있도록 F-4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현재 수백 명의 해외입양인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해외입양인은 흔히 정체성의 혼란이나 인종 차별을 겪곤 한다. 벨기에로 입양된 만화가 융 헤넨(51·전정식) 씨는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는 한국을 외면했다. 차라리 나와 피부색은 같지만 나를 버리지 않은 일본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입양 서류에 기재된 '피부 색깔=꿀색'이라는 문구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국내에도 알려졌다.
지난해 1월 뉴욕타임스는 '해외입양인들은 왜 한국으로 돌아오는가'라는 제목의 해설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해외입양인을 "완전한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아시아인이자 서양인, 백인, 입양인, 혹은 그 외 사이의 존재"라고 분석했다. 여전히 해외입양인들은 정체성의 혼란과 문화의 차이 속에 살아가고 있다. 조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