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을 보고 나서 생각나는 사진 하나가 있었어요. 보기만 해도 추운 눈보라에 들짐승이 웅크리고 있는 건데, 순태가 딱 그래 보였어요. 버티고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영화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에서 권순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택시기사다. 딸 동현(김향기)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든 누명을 벗어야 한다. 그런데 상황은 점점 더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언젠가 스쳐 지나갔던 사진 한 장이 딱 순태였다는 것. 김상호는 이 때문에 순태를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연기는 쉽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순태는 억울한 사람. 그것만 가지고서는 대중을 이해시키기 어려웠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순수하게 나 혼자만으로는 안 됐다”며 “그 대신 내 주위 환경이 대신 어필해줄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순태를 몰아가는 환경 속에서 꼬물꼬물 벌레처럼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 안타까움을 가지지 않을까요. 그 두 개가 호흡이 잘 맞고, 비율이 잘 맞아떨어지면 좋아하실 거로 생각했죠.”
 
이를 위해 중요했던 건 수위. 너무 강하게 어필하면 튕겨 내버릴 수도 있고, 그렇다고 너무 조용하면 그 감정 자체를 잘 모를 수 있다는 것. 그는 “중심은 있는데, 많고 적음을 어떻게 할 건지 계속 고민했다”며 “결국엔 연출자의 크기대로 만들어지지만, 이를 놓고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감독과 배우는 어느 정도 겹쳐 있어요. 연출 마인드라기보다 공유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이번에는 훨씬 많았어요. 극적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죠. 그것도 재밌더라고요.”
 
순태의 절박함이 더욱 두드러졌던 건 동현으로 분한 김향기와의 호흡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김상호 역시 “좋은 울림 판이 되고, 메아리가 됐다”고 공을 인정했다. 
 
칭찬도 이어졌다. 그는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고 얘기하고 싶고, 꾸미고 싶어 한다”면서 “근데 향기는 꾸밈없이 딱 그 나이다. 연기할 때도 그게 그대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꾸미지 않으니까 먹먹해지는 것”이라며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닮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처음에 닮았다고 해서 거짓말인 줄 알았다”며 “근데 시사회 할 때 배너를 보니까 닮았더라”고 웃음 지었다. 이어 “(향기는) 기분 나빠 할 걸요. 아마 꽤”라고 연신 큰 웃음소리를 냈다. 
 
 
또 ‘김상호표’ 아버지는 흔히 봐왔던 것과는 다른 감성을 자아낸다. ‘특별수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타고난 어떤 독특함이나 특징이 있는 것 같다”며 “중1 때 돌아가신 엄마가 ‘상호가 울면 내가 서럽다’고 하더라. 논리적으로 말하긴 부족하지만, 그게 저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유독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김상호는 “음식점에 들어가면 다 맛있는데,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것에 먼저 젓가락이 간다”며 “대본을 봐도 익숙한 것을 먼저 본다. 그리고 다른 게 붙어서 완성된다”고 말했다. 
  
“연기 변신은 혼자 못 해요. 뭔가 다른 것을 원하는 감독님이 써 주셔야 하고, 투자도 돼야겠죠. (웃음) 하여튼 그리고 나면 싸우겠죠. 익숙한 게 아니라 저 멀리 있는 거로 중심을 세워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저 혼자서는 못 하는 거죠.”
  
사진=강민지 기자 
 
황성운 기자 jabo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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