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자칫 고립무원 신세로 전락해버릴 판국이다. 무슬림계 전사자 가족들에 대한 모욕 발언으로 일부 공화당 인사들 마저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31일(현지시간) 2004년 이라크전에서 아들을 잃은 무슬림계 미국인 키즈르 칸 부부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이 대선후보 자질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칸 부부는 지난 28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날 연사로 참석해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정책을 비판하며 "(트럼프는)헌법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트럼프는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힐러리가 연설 대본을 써준 게 분명하다"며 칸 부부의 연설을 깎아내렸다.
트럼프는 남편과 함께 연단에 섰던 아내 가잘라 칸을 겨냥해 "그의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말을 할 수 있도록 허락받지 못했을지 모른다"고 말해 무슬림 비하 논란까지 촉발했다.
트럼프는 또 31일에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자신의 무슬림 입국금지 공약에 대해 "급진 이슬람 테러조직에 관한 문제이고, 테러를 근절해야 할 '지도자들'의 나약함에 관한 문제"라고 재차 설명했다.
이어 "나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사망한 참전군인의 아버지인) 키즈르 칸으로부터 사악한 공격을 받았다. 나도 대응할 권리가 있지 않느냐"라고 반박했다.
트럼프의 변명에도 불구, 미국 여론은 그에게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다.
◆ 린제이 그레이엄 "트럼프, 불가침의 영역 넘었다"
칸은 31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고 공감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자질이 없다"고 비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도 "칸의 가족은 엄청난 희생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트럼프에게 들은 건 모욕과 무슬림에 대한 비하섞인 발언 뿐이다. (트럼프는) 무엇이 미국을 최고로 만들었는지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 정치 논쟁 커뮤니티인 데일리 코스에서는 트럼프를 "상대의 감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라고 표현했다.
공화당 인사들도 트럼프의 이번 무슬림 비하 발언에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많은 무슬림 미국인들이 우리 군에서 용감하게 싸우고 희생했다. 캡틴 칸과 그 부모의 희생은 언제나 존경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언 의장은 또 "전에도 수없이 말했듯이 미국 입국을 위해 종교적 테스트를 하는 것은 미국의 근본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무슬림 입국금지에 대한 반대도 다시 천명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성명을 통해 "캡틴 칸은 미국의 영웅이고, 다른 모든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타적인 젊은이 캡틴 칸과 그 가족의 희생을 감사히 여긴다"고 강조했다.
매코널 역시 "특정 종교인 전체에 대해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는 칸 가족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덧붙였다.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도 트위터에 "전사자 가족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은 명예와 존중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린제이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불가침의 영역을 넘었다. 트럼프가 칸 부부에게 날린 한 방은 (미국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동훈 기자 ldh@
< 저작권자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