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생여행사 윤동일(51) 대표는 서핑을 좋아한다. 잠깐이라도 짬이 날 때면 부산 송정 바다로 향한다. 특별히 서핑 동호회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홀로 보드 위에서 파도를 탈 뿐이다. 홀로 서핑. 거기에 무엇이 있어 그를 매료하는 걸까? 독백 형식을 빌려 윤 대표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기러기 아빠 시절 처음 접해
스트레스 사라지고 건강 좋아져
파도 타며 가장 진실한 자신 발견
■온전히 비우고, 온전히 채운다
지금 이 바다. 넓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오직 파도다. 멀리서 파도 한 무리가 밀려온다. 거칠지 않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다가온다. 보드 위에서, 패들링, 그러니까 두 팔을 앞뒤로 저어 녀석을 마주해 나아간다.
파도 위로 올라 선다. 녀석은 별다른 저항 없이 등허리를 허락한다. 보드는 그 위에서 파도와 함께 주욱 미끄러진다. 잽싸게 올라선다. 떨어져선 안 된다. 허리를 숙이고 두 다리를 구부려 무게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파도의 파편이 바람에 실려 발등과 허리, 얼굴까지 차갑게 때린다. 그대로 질주다. 자유다. 어쩌면 이 짜릿한 자유가 영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파도가 잦아든다. 이 또한 좋다. 보드 위에 누워 본다. 가을 햇살이 꽤 따끔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수평선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는 어머니의 자궁이랬지. 푸근하고 평화롭다. 사업, 약속, 만남…. 마음을 괴롭히던 소소한 일상사들이 바닷속에 스르르 녹아 사라진다.
중력이 사라진다. 홀로 부유한다. 바다가 내가 되고 내가 곧 바다가 된다. 이런 걸 혼연일체라 하나…. 평온함 속에 문득 만사에 감사함을 느낀다. 왜 그럴까. 햇살, 바람, 파도…. 달라 하지 않은 것들인데도, 풍부하게 나에게 준다. 이 또한 '그분'의 은총일 테다. 몸 안에 그 무엇이 완전히 빠져나간다. 그런데 오히려 가득 차 있는 듯한 이 느낌은 또 무언가!
■2012년 뜨거웠던 그해 여름
외로웠다. 아들과 딸 등 가족은 미국에서 공부하며 산다. 수십 년 묵은 일을 버리지 못해 홀로 부산에서 지낸 지 오래다. 몇 달에 한 번씩 볼 때마다 서로 어색함이 더해 갔다. 헤어지고 나면 닥치는 단절감은 견디기 힘들었다.
계속되는 불황에 스트레스는 가중됐다. 잠을 못 이뤄 밤을 새우는 날이 이어졌다. 병원을 찾아다니며 수면보조제를 처방받아 먹어야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나아질까 싶어 테니스를 배우다 무리했다. 허리와 목에 디스크 질환이 생겼다. 손발의 저림까지. 먹어야 하는 약이 늘어났다.
심신의 괴로움이 절정에 달했던 2012년 여름, 아들이 한국에 찾아 왔다. 모처럼 만난 아들. 어색하게 있다가 그대로 돌려보낼 순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아들과 함께 무얼 할까 알아보다 서핑을 알게 됐다.
아들과 함께 참석했던 서핑 강습. 처음으로 보드 위에서 파도에 몸을 맡겼던 순간 웬일인지 흥분됐다. 세월과 함께 나온 배로 인해 수십 차례 일어서지도 못하고 물속에 처박혔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 할 운동. 열심히 배웠다. 드디어 보드 위에 올라서게 됐을 때, 마치 구름을 타는 듯했다. 평생 처음 했던 경험.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오직 혼자일 뿐, 거기서 나를 본다
몸도 건강해졌다. 조용히 움직이는 것 같아도 서핑, 이거 꽤 힘들다. 밀려오는 파도를 타기 위해선 근력과 순발력, 지구력이 다 필요하다. 좀 더 잘하고 싶어 헬스 트레이닝도 했다. 자연히 배가 들어가고 몸은 탄탄해졌다. 균형감각도 좋아지고, 디스크로 인한 저림이나 통증도 많이 완화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나 스스로와 좀 더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아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시작했는데 신기한 일이다. 서핑은 분명 혼자 하는 운동이다. 남이 대신 밀어 줄 수도, 함께 타 줄 수도 없다. 모터의 힘으로 보드를 움직일 수도 없다. 자신만이 고독하게 파도를 기다리며 파도에 맞추어 자신을 맡겨야 한다.
그 순간을 통해 가장 정확한 자신을 볼 수 있다. 가장 정직하게 자신을 믿을 수 있다. 파도를 통해 가장 진실한 자아를 마주할 수 있다.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