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혼술? 나는 혼놀!] 사람이 스트레스… 놀 때만이라도 혼자 놉시다, 좀!

입력 : 2016-11-06 19:05:24 수정 : 2016-11-08 11: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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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표 지점까지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도달했을 때 얻게 되는 희열이 클라이밍의 매력이다. 여상순 씨가 'SO클라이밍 짐'에서 실내 인공 암벽을 오르는 모습. 강선배 기자 ksun@

'홀로'라는 단어가 아주 당당해졌다. 예전엔 '홀로'는 곧 '외톨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이제 '홀로'는 자신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통계청의 '2015 인구 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27.2%를 차지했다. 이전까지 가장 많았던 4인 가구를 넘어섰다. 15년쯤 뒤에는 세 집 중 한 집은 1인 가구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니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말이 낯설지 않다. 이젠 레저, 즉 노는 데도 '홀로'가 대세가 될 터이다. '혼놀'쯤 되겠다. 벌써 그런 조짐이 짙어지고 있다.

15세 이상 한국인 56.8%
"혼자 즐기는 여가 선호"

레저 대세였던 자전거 시장도
함께 타는 산악 자전거 줄고
혼자 즐기는 로드 자전거 급증
실내 클라이밍·나 홀로 여행 등
새 여가 트렌드로 자리 잡아

■암벽을 오르며 '나'에게 몰입한다

부산 북구 화명동에 있는 'SO클라이밍 짐'. 실내에서 인공 암벽을 오를 수 있는 사설 체육관이다. 흥겨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여상순(44) 씨가 인공으로 된 암벽을 오르고 있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인공 암벽의 홀드와 홀드를 옮겨 다니는 그의 손과 발이 날렵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팔과 다리엔 섬세한 잔 근육이 올올이 돋아 있다. 이 순간 그의 모든 신경은 홀드를 붙잡고 있는 손끝에 가 있다. 다른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여 씨는 경남 양산에 사는 주부다. 실내 클라이밍을 한 지는 만 4년이 됐다. 어느 날 암벽 등반이란 걸 알게 됐다. 온몸으로 오르는 것 하나에 몰입하는, 오롯이 홀로 문제를 극복해 내야 하는 운동.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자 실제 암벽 타러 가기가 힘들어졌다. 어쩔까 고민했는데, 실내 인공 암벽 등반, 즉 실내 클라이밍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대로 달려가 등록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좀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다른 운동요? 그런 거 없었어요. 실내 클라이밍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했는데, 실제 암벽 등반만큼이나 매력이 있더라고요. 여자가 하기엔 힘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꾸준히 하니 저도 모르게 힘이 길러졌어요. 목표를 잡아 달성하는 성취감도 있고…. 그런 게 장점이에요. 무엇보다 제가 성향으로 봤을 땐 홀로 조용조용히 하는 편이라 그런 점에서 저한테 맞는 운동이라 생각해요."

클라이밍이라고 해서 단순히 그냥 벽을 오르는 게 아니다. 오르는 데도 다양한 단계와 과정이 있고, 때로는 스스로 과제를 설정해 퀴즈 풀듯이 머리 써 가며 풀어야 한다. 상당히 고민해야 하고 온갖 방법을 모색해서 도전해야 한다. 처음에는 몸만 건강하게 해 주면 된다 했는데, 해 보니 정신건강까지 좋아졌다.

실내 클라이밍에 숙련되니 실제 암벽 등반에도 자신이 생겼다. 사실 여 씨는 지난 5월까진 직장생활을 했다. 6월에 그만뒀다. 날씨가 안 좋아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알프스산맥의 최고봉 몽블랑 산에 도전했던 것이다. 2년쯤 뒤에 한 번 더 도전할 생각이다. 이런 자신감은 모두 실내 클라이밍 덕분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SO클라이밍 짐' 김소헌 센터장은 "클라이밍은 힘들지만 혼자서 목표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의 희열이 그 어떤 운동과도 비교할 수 없다. 별다른 장비 없이 1개월에 10만 원 정도 비용만 들어가면 되니 요즘엔 젊은 사람, 특히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고 밝혔다.

■홀로 논다, 온전한 '나'를 만난다

여 씨가 그런 것처럼 혼자서 하는 레저 활동을 즐기는 이른바 '혼놀족'이 근래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 동향 2015'에 따르면 15세 이상 우리나라 사람 중 56.8%가 '혼자 여가를 즐기는 걸 선호한다'고 답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여가를 즐긴다'는 사람은 8.3%에 불과했다.

여행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가족 또는 친구끼리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시끌벅적한 여행보다는 자기만의 여행을 즐기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미혼의 직장인 정태민(32) 씨는 매달 두세 번은 홀로 여행을 떠난다.

"주로 금요일 오후에 출발하지요. 제주도도 자주 갑니다. 친구나 가족이랑 간 적은 거의 없어요. 혼자가 더 편하거든요. 관광이라기보단 일종의 명상이랄까. 아무튼 꽉 찬 일정이나 신경 쓸 일행이 없으니 오롯이 나만의 여행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요."

여행업계에서는 이미 '나 홀로 여행족'들을 위한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부산의 한 여행업체 관계자는 "단체로 이동·숙박하는 상품보다는 개별 예약상품이 훨씬 인기가 높다. 한 가지만 콕 찍어 떠나는 나 홀로 힐링 여행인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홀로 노는 트렌드는 기존 레저의 형태까지 바꾸고 있다. 자전거 라이딩이 그렇다. 보통 MTB라고 산악 자전거가 가족 또는 동호인들 위주로 유행하고 있지만 근래 들어 홀로 빠른 속도감을 즐기는 로드 자전거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자전거 시장의 대세였던 산악 자전거의 수요는 줄고 로드 자전거의 수요는 늘었다. 2008년 이전에는 전체 자전거 구매자 중 산악 자전거 구매자가 70.7%였으나, 2015년에는 29.7%로 41%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로드 자전거는 1.8%에서 24.9%로 크게 증가했다.

그에 따라 관련 업체들도 알루미늄 신소재를 통해 무게를 줄이고 변속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속도는 높이고 산악 자전거 수준의 브레이크를 장착하는 등 안전장치는 보완하면서 늘어나는 로드 자전거 수요에 대처하고 있다.

단체로 즐기던 캠핑도 이제는 혼자서 즐기는 시대가 됐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지난 1~8월 1인용 캠핑용품 소비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대비 매출이 17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캠핑용품 업체들은 가볍고 수납이 쉽도록 설계된 텐트 등 나 홀로 캠핑족을 겨냥한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가을 서핑을 즐기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한여름 서핑은 휴가 등 동호인들 위주로 주로 이루어지지만 가을 서핑은 온전히 혼자만을 위한 것일 경우가 많다. 한국서핑협회는 특히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서핑 인구가 50% 이상 늘어났으며, 이는 홀로 서핑을 즐기려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산 송정의 서핑아카데미 '서프짐'의 민경식 사장은 "가을 바다는 피서객이 사라지고 또 큰 파도가 자주 일어서 오히려 서핑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혼자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최적의 놀이터인 셈이다"고 밝혔다.

부산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윤경일 과장은 "그동안 우리 사회는 타인의 평가와 경쟁, 간섭 등 집단 문화 풍토가 개인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소위 '혼놀'은 집단 문화 풍토로 생기는 피로를 줄이고, 자신과의 관계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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