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힘겨웠던 2016년이 지나가고 새해가 왔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다. 신년에 트위터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가 '새해 복'이 아니라 '블랙리스트'라니 탄핵 시국이 우리 삶의 소소한 즐거움마저 앗아가 버린 기분이다. 울적한 심정으로 9473명의 이름이 포함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들여다보며 지난 4년간 의심을 하여 온 순간들을 다시 떠올린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었던, 답답하고 분노한 순간들.
S# 1.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 사태'가 빚어졌다고 믿긴 어려웠다. 벼룩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집 한 채를 태우는 꼴이었기 때문이다(결과적으로 그건 이 정부의 지능지수에 걸맞다). '다이빙벨'은 핑계고, 다른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틀렸다. 청와대 권고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불명예 퇴진을 당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되었다. 대통령과 달리, 진짜로 '개인적인 이득은 한 푼도 취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신년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
9473명 포함된 '블랙리스트'
BIFF 사태 배후에 실재해
일관성 없이 작성된 리스트에
일부 문화인들 "이름 없다" 분통
어느새 훈장이 돼 버린 사회
S# 2. 부산영화제 사태가 시작된 2014년에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분주했다는 게 이제야 밝혀졌다.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에 따르면 '문화예술계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그 문구에서 왠지 북(北)의 기운이 느껴진다.
S# 3. 비망록에는 '다이빙벨'을 배급한 '시네마달'에 대한 내사도 기록되어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당시 김기춘)이 지시하는 내사라니 후덜덜할 일이지만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는 뜻밖에 슬픈 얘기를 들려주었다. "불행하게도 시네마달이 너무 가난해서 뒤져서 뭐가 나올 만한 곳간이 아니다." 영세한 미생기업 시네마달이 두려워한 것은 내사가 아니라 지원탈락이었다.
S# 4.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 '광해'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386 좌파의 숙주'로 낙인찍혀 내쫓긴 탓에 문화검열시대의 가장 큰 희생양처럼 언급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이후 CJ가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의 제작과 배급으로 정권의 호의를 사려던 것과 달리 '좌파의 본산' 독립영화계는 정부지원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제작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
S# 5. 누가 보나 '좌파'인 어느 독립영화감독은 1만 명에 달하는 블랙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없다는 것에 분통을 터트렸다. "내가 그간 얼마나 열심히 여기저기 서명하고 다녔는데!" 난 그의 분노를 이해한다. 소설가 이외수조차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빠져 극심한 소외감과 억울함을 금치 못했다"고 트위터로 호소한 바 있다. 반면 리스트에 포함된 고은 시인은 "영광"이라 했다. 급기야 조윤선 장관 사퇴촉구 기자회견에 나선 문화예술인들은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다"라고 외쳤다. "블랙리스트는 리스트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이 리스트가 지극한 성의 없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문제"라고 일갈한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느새 블랙리스트는 훈장이 되어 버렸다.
S# 6. 직무정지 중인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블랙리스트를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참 많은 사람이 언급되었다고 들었는데, 라며 예의 다음과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다. "오히려 많이 품어가지고 하는 거는 참 좋은 일 아니냐, 그렇게 들었다, 그때…전하는 얘기는 다 그게 그대로 이렇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통은 대화를 하지 않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소원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