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국립대 교수들 “‘서울대 10개’ 예산·실행계획 제대로 마련해야”

입력 : 2025-06-20 12:00:00 수정 : 2025-06-20 13: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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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부산대 등 9곳 교수회 연합회
20일 성명서 발표 통해 정부에 촉구
“한정된 재원 두고 경쟁하게 될 것”

부산 금정구 부산대 정문. 부산일보DB 부산 금정구 부산대 정문. 부산일보DB

거점국립대 교수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실행안과 예산 확보 없이 추진될 경우, 고등교육 정책의 부실화와 대학 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책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재정 기반과 제도 설계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하 거국련)는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서울대 수준의 70~80%에 해당하는 지원을 거점대학에 제공하려면 최소 3조 원이 소요될 것”이라며 “그러나 이와 관련한 재정 확보 방안은 아직 제시된 바 없다”고 지적했다. 거국련은 서울대와 9개 거점국립대로 구성돼 있으며, 현재 충북대가 회장교를 맡고 있다. 경북대는 학교 사정으로 활동에 불참하고 있다.

특히 거국련은 올해 종료 예정인 고등교육·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를 언급하며, 내년부터는 고등교육 재정이 축소될 가능성마저 제기했다. 초중등 예산을 전용하거나 기존 대학 예산을 재분배하는 방식이 거론되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 교수들의 판단이다.

정부가 고등교육 재정을 확충하지 않은 채 특정 대학 중심으로 지원을 몰아줄 경우, 전체 대학 생태계가 제로섬 경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거국련은 “이대로라면 서울대와 수도권대, 거점대, 지방대가 한정된 재원을 두고 경쟁하게 되며, 고등교육 전반이 소모적인 구조로 퇴행할 수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명확한 예산 계획과 지속 가능한 정책 설계”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거점국립대 교수들은 단순한 재정 투입보다 구조적 혁신과 협력 기반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서울대 10개’라는 이름에 걸맞은 효과를 내려면, 대학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자율적인 개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대와 수도권 대학이 보유한 인프라를 지역 거점대가 함께 활용하고, 공동학위제나 연구 교류 등 상생 모델을 확산하는 방식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됐다.

대학 내부 혁신도 과제로 떠올랐다. 거국련은 각 대학이 회계 정보를 전면 공개하고, 외부 컨설팅을 도입하는 등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스스로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재정 집행에 대한 객관적 평가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는 대학이 자율성을 요구하려면 그에 걸맞은 공적 책임을 보여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 지원 방향에 대해서도 구체적 요구가 이어졌다. ‘건물 중심’의 전시성 사업보다 교수와 학생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사업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성과 중심의 임금제도 도입이나 연구 환경 개선 등도 대학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기반만 제공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아울러 지자체나 외부 기관의 대학 운영 간섭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전 정부의 라이즈(RISE) 사업에서 발생했던 지자체의 과도한 개입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국련은 “대학 간 상생은 단순한 예산 배분이 아니라 제도 설계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정부는 구호를 넘어서 고등교육 체계 전반을 실질적으로 손질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특정 대학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수도권과 지역이 함께 살아남는 국가 전략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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