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연석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한석규, 서현진과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한석규의 김사부가 이미 완성된 인간이자 의사라면, 유연석의 강동주는 수술하는 기계같은 모습에서 인간성을 갖추는 의사로 성장하는 캐릭터였다.
유연석의 연기는 다른 배우들과의 호연, 탄탄한 대본, 극적인 연출 등과 함께 27.6%(닐슨코리아, 전국기준)라는 높은 시청률을 이끌어 낸 원동력이 됐다. 종편과 케이블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최근 흐름에서 이 같은 시청률은 상당히 높은 수치다.
강동주는 흙수저로 태어나 출세만을 목표로 달리다 김사부를 만난 후 좋은 의사로 성장한다. 25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유연석을 만나 강동주를 연기하며 느끼고 생각했던 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 "수술 장면 속 손, 중반 이후는 거의 다 제 손입니다"
"의사를 위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그 분들이 몰입할 수 없다면 성공적인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준비 정말 많이 했어요. 수술 연습을 많이 했죠. 그래서 드라마 중반 이후 수술 장면 속 손은 거의 다 제 손이었어요. 물론 자문의사가 촬영장에 따로 있었죠. 또 극 중 응급실에서 많은 일이 이뤄지니 진짜 응급실도 많이 찾아갔죠. 그런데 드라마처럼 매번 사고가 발생하는게 아니니 다큐멘터리를 많이 참고 했어요."
의사는 변호사와 함께 드라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문직이다. 하지만 전문용어로 점철된 대사와 보통 접하기 힘든 상황들을 많이 맞닥뜨리기 때문에 연기하기 쉽지 않은 배역이기도 하다. 특히 의사는 의학용어를 쏟아냄과 동시에 심폐소생술 같은 긴급 치료나 수술처럼 '액션'을 취하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다. 특히 대사와 대사 사이의 공백을 치료행위로 채워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부분에 있어 유연석도 고민이 많았다. 이에 그가 선택한 것은 '숙련'이었고 그 길은 오직 '연습' 뿐이었다. 때문에 수술 장면에서 대역이 거의 없었다는 말은 그의 노력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연석은 그 공을 자문의사에 돌리며 "함께 고민 많았다. 그 분들 덕택에 리얼하게 표현할 수 있었고"고 겸손해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최고시청률, 평균시청률 모두 2016년 SBS 드라마 1위를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었다. 1회는 9.5%라는 한자리수 시청률이었다. 이는 전작인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가 부진했었고, 그 전작인 '닥터스'가 큰 성공을 거둔 의학드라마였기에 시청자들이 같은 장르에 지쳐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식상한 장르가 아닐까 우려가 있었죠. 또 워낙 멋진 의학드라마가 많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내가 연기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아서 부담 있었죠. 하지만 유인식 감독과 강은경 작가와 함께 한 경험을 믿었고, 강동주라는 캐릭터가 고민하고 성장하는 부분이 20~30대의 그것과 닿아 있어서 우리의 메시지를 잘 전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죠."
유연석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대표적으로 응급실에 먼저 온 내 아버지보다, 나중에 왔어도 더 위급한 사람이 먼저 수술 받는 장면에서 고뇌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보고 눈물 흘렸다는 댓글이 마음에 와 닿았고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이와 함께 유연석은 "특히 지난해에는 많은 일들로 국민들이 심란한 상태였다. 이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드라마 캐릭터들이 대신해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줘서 많이 사랑해주신 것 같다"고 자신의 생각도 덧붙였다.
■ 한석규는 유연석의 '한사부'...환자 역할 단역 배우도 기억해주길
'낭만닥터 김사부'를 통해 강동주는 물론 유연석도 성장했다. 어떤 작업이든 마찬가지지만 여러명이 함께 하면 1+1이 2+@가 될 수 있다. 유연석 역시 시너지효과에 새삼스레 감탄하며 "작품은 누구 하나의 동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마 제가 느낀 것 이상으로 주변 분들이 저를 도와주셨으리라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유연석이 우선 꼽은 동료는 한석규였다. 강동주의 정신적, 의술적 스승인 김사부를 연기한 그는 유연석에게는 '한사부'였다. 두 사람은 영화 '상의원' 때도 함께 했으나 그때 유연석은 왕이었기에 신하인 한석규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번 만큼은 눈맞춤은 물론 주먹질까지 한 친밀한(?) 사이였기에 많이 배웠다고.
"연기적인 배움도 좋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따로 있어요. 한 번은 방송을 보고 난 후 제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잘 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또 '너나 현진이나 배우로서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 연기적으로 집중해나가면 더 좋은 결과 낼 수 있다'고 격려해주시니까 정말 힘이 되더라고요. 정말 사부님이 됐죠."
함께 호흡을 맞춘 서현진도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다. 유연석은 "걸그룹 '밀크' 멤버일때부터 서현진을 눈여겨 봤다. 또 다른 멤버였던 박희본이 대학 동기였다"라며 "이후 연기 활동 과정을 쭉 지켜보며 완벽하고 맛깔나게 캐릭터를 소화했던 모습에 감탄했다"고 칭찬을 늘어놨다. 특히 로맨틱코미디를 많이 했던 탓에 로맨스 장면에서는 최고였다고 회상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개성있는 연기를 펼쳤던 진경, 임원희, 최진호, 장혁진, 주현 등 선배들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또 양세종이나 신은수 같은 신인 배우들에 대해서도 "제가 데뷔했을 때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유연석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에게도 감사함을 표했다.
"또 하나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이, 의사들도 고생이지만 매회 등장한 환자 역할 배우들도 고생 많으셨어요. 실제 환자가 아닌데 심폐소생술을 받고, 인공호흡기 달고, 겨울임에도 상의 뜯고 옷 자르고, 분장도 하고. 여간 고충이 아니었을거에요. 의학 드라마가 쉽지 않다는 건 배우나 제작진도 마찬가지지만 이 같은 단역 분들도 해당하는 말임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드라마 초반에 등장했던, 항문에 들어간 이물질 때문에 거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황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NG가 많이 났다"라면서 "그런데 사실 이 분이 마지막 회에서도 교통사고로 돌담병원에 등장해 제가 '어? 여기서 뵙네요'라고 알아보는 장면도 있다. 그런데 이게 통편집 돼 아쉽다"는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 드라마가 낭만을 표방했기 때문에 유연석도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드라마가 전하고자 한 주제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생각하고, 그 가치를 잃어버리지 말자'다. 그리고 그것이 낭만이라는 것이다.
"사람답게 산다면 낭만을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사람들의 관계를 놓지 않는 것. 아무리 화면 속에 있는 배우라도 사람냄새가 나도록 노력해야하는 것. 이렇게 사는 것이 낭만적인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 냄새 났으면 좋겠어요."
김상혁 기자 sunny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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