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청구를 인용했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이끈 데에는 광장의 촛불 민심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촛불집회는 지난해 10월 29일부터 5개월 가량 이어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 퇴진을 요구하며 성난 민심을 드러냈다. 또 초기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 야당을 질타했으며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특검 수사를 요구했고, 헌법재판소를 향해서도 탄핵 인용을 촉구했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냉정하고 차분한 시위를 이어가며 성숙한 시민 의식을 나타냈다. 이런 모습들이 지속적인 호응을 이끌며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도 받는다.
첫 촛불집회가 시작됐을 당시에 참가한 인원은 3만명(주최 측 추산)으로 평범한 집회 수준이었다. 이때만 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실제로 탄핵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것으로 추정된 태블릿PC가 발견되면서 상황이 급변됐다. 최씨는 태블릿 PC를 통해 국가 주요 기밀 문서를 확인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설문등을 직접 수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연설문 작성 과정에서 최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이후 촛불 집회 참가자들은 대통령의 '하야', '퇴진'을 요구했다. 특히 민중총궐기를 겸해 열린 3차 촛불집회에서는 첫 참가자의 30배가 넘는 100만명이 모였다. 이어서 최씨 딸 정유라씨의 입시비리 문제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명확하지 못한 대국민담화문은 촛불 민심을 더욱 결속시켰다.
정치권은 초기에 신중론과 탄핵 전 개헌론 등을 논의하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지만 촛불 집회를 통해 민심의 향방을 확인 한 후 본격적인 탄핵 추진에 들어갔다.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남정수 공동대변인은 "광화문광장이 대한민국을 바꾸는 정치였고 촛불이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보다 더 무서운 정치였다"며 "민심이 모이면 태산도 옮길 수 있고 '절대권력'인 대통령도 탄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박 대통령 탄핵은 사실상 촛불 민심이 이끈 것"이라고 촛불집회의 의의를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촛불집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 정권 내내 이어져 온 단체·계층의 투쟁과 저항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이후 3년 가까이 농성과 투쟁을 벌이면서 촛불집회에 앞장선 것이 대표적이다.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고, 구조 과정에서 수 많은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유가족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이어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안에도 참사 당일 이른바 '대통령의 7시간'이 적시됐고 헌재는 탄핵심판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을 중점적으로 물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세월호 희생자·미수습자, 백남기 농민, 노동 현장에서 쫓겨난 수많은 노동자와 억울하게 희생된 여성들의 공덕이 쌓였기에 촛불집회가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안진걸 퇴진행동 공동대변인(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헬조선'을 바꾸자는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촛불집회를 이룬 것"이라면서 "탄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퇴진행동은 이날 회의를 열고 향후 주말 촛불집회를 계속 이어갈지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또 촛불집회는 비폭력·평화집회 문화가 정착하는 새로운 계기를 남겼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인원들이 참석했고 탄핵 찬성과 반대를 외치는 참가자들이 한 곳에 모이면서 충돌 우려가 제기됐지만 경찰에 연행된 사례는 극히 일부였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치안전망 2017'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가 상호 신뢰하면서 성숙한 집회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와 협조해 인근 지하철역 이용자 빅데이터 자료를 활용하고 정확한 참가 인원을 집계한 것도 주효했다. 퇴진행동은 자신들이 추산한 집회 참가 인원이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의 여론조사 결과와 비춰봤을때 상당한 정확성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김상록 기자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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