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라고 말했다.
이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015년 12월의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과 협상 과정을 조사하는 `위안부 합의 검증 TF'를 외교부 내 설치를 지시했고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도 취임하자마자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합의 재협상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역시 가칭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를 설치하고 국립역사관을 건립해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사회적 인식 확산을 위한 조사·연구·교육, 기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일련의 조치가 지난 정부에 의한 `잘못된' 위안부 합의의 파기와 재협상을 요구하기 위한 수순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합의 당시와 그 후에 보인 일본 측의 반성과 사죄에 대해 한국 측이 그 진의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10억 엔의 거출과 소녀상의 이전,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을 되풀이하는 그간의 일본 정부의 행태는 한국 국민의 불신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일본 아베 총리는 자신이 직접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 표명을 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다고 말해 한국 국민의 불신감에 기름을 부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일본 측이 인정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양국이 협력하자고 강조해왔다.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60%가 합의를 평가하지 않고 70%가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지적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각각 1억 원과 2천만 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합의 당시 생존자 46명 가운데 36명이 수용 의사를 밝혔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위안부 합의 비판론자 중 일부는 정부와 재단이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합의 내용을 왜곡해서 전달하고 현금 수용을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진위는 외교부의 검증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피해자와 유족에게 지급되는 현금은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피해자들에 대한 `복합적인 인권침해'(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從軍慰安婦』, 1995)에 대한 최소한의 물질적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금지급 사업은 위안부 합의에 입각한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의 하나일 뿐이며 현금 지급을 수용했다고 해서 피해자 개인의 법적 권리가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한일 양국은 상대방이 할 수 없는 일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합의 이행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이전에 피해자와 한국 국민을 향해 진솔한 목소리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의 어느 부분을 한국 국민이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일본 측이 중시하는 소녀상의 이전이 왜 어려운지를 일본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정상 간의 긴밀한 소통을 위해 복원하기로 합의한 셔틀외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측의 고노 담화 검증 움직임에 대항해 정부는 `위안부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했지만, 합의 이후 백서 발간은 중단되고 연구자 개인의 의견을 담은 용역 보고서가 출간되었다. 돌이켜보면 1992년 7월 당시 외무부 아주국장을 반장으로 하는 정신대문제 실무대책반이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서서'를 발간한 이후 우리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독자적으로 조사하고 결과를 정리해 발표한 적이 없다.
외교부의 위안부 합의 검증이 지난 정부의 과오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디딤돌이 되길 기대한다.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도쿄대 법학박사, 국제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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