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서가 헌법재판소에 접수되어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됐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시위를 시작한 10월 말부터 대통령은 사실상 대통령이라고 할 수 없다.
탄핵소추안의 국회 표결을 앞두고 실시한 한국갤럽의 조사에 의하면,응답자의 80%가 탄핵에 찬성했으며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5%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의 마음은 이미 대통령을 떠났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에 대해 인용을 결정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면 되지만, 기각할 경우에는 극한 대립 상황이 벌어져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래도 세계의 시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미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례적으로 지난 11월 29일자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대통령직을 즉각 사임해 국정 마비와 정치적 논쟁을 끝내야 한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2017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신정권은 미국제일주의에 입각한 고립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국제정세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옛 소련 시절 잃었던 크림반도를 병합하자 `힘에 의한 현상변경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던 서방세계는 러시아를 주요 8개국(G8)에서 축출했다. 서방의 강력한 경제제재로 러시아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었지만, 국내에서는 반미·애국주의가 고조되어 푸틴에 대한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푸틴의 후계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어 2018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이 재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포브스가 선정한 201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1위 푸틴과 그에 호감을 갖고 있는 2위 트럼프의 관계는 적대적이었던 오바마 정권 때와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러시아와 함께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도전해온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도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난 12월 2일 트럼프는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 전화 회담을 했다. 1979년 미중 국교수립 이후 타이완과 단교를 한 미국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자가 타이완 총통과 전화 회담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트럼프는 하나의 중국 정책에 구애받지 않을 것임을 시시하면서 중국 측의 거센 반발을 샀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오랜 친분이 있는 테리 브랜스타드 아이오와 주지사를 중국대사에 내정했지만,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 라인스 프리버스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을 역임한 에드윈 풀너 등 친타이완파들이 트럼프 신정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중국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지만 중국은 이 판결을 거부하고 남중국해에서 군사시설을 건설을 계속하고 있어 주변국은 물론 미국과의 마찰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직은 전 세계 군사비의 40%를 차지하는 미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의 국방비는 세계 2위다. 현재의 증가 추세가 계속되면 2020년의 중국 국방비는 2010년의 거의 두 배인 2천300억 달러를 넘어 영국의 4배, 모든 서유럽 국가의 국방비 총액을 상회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러시아와 손을 잡을지, 아니면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과의 관계를 강화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중국은 러시아가 서방세계와 대항하기 위한 중요한 동맹국이지만, 양국의 경제력에 커다란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시진핑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와 러시아가 구소련 지역을 경제적으로 통합하려는 `유라시아경제연합' 구상은 경쟁적인 측면이 강하다.
약 한 달 후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선다. 미중, 미러, 중러 관계 등의 변화는 한반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변국의 지도자들은 매우 개성이 강하고 터프하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 정국이 지속되면서 외교는 완전히 공백 상태다. 올해 1월과 2월 북한이 잇달아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감행한 후 남북 간의 대화는 물론 교류·협력도 전면 중단됐다.
2017년의 대한민국호가 거센 파도를 헤치고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정확한 나침반과 해도가 필요하며, 선장과 선원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서로 믿고 협력해야 한다. 이미 실종된 대한민국호의 선장 찾기는 시작됐다. 법과 제도, 절차를 존중하면서 주변 강대국의 이해를 세련되게 조정하는 책임감 강한 선장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도쿄대학 법학박사, 국제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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