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는 참 부드럽다. 살아 있는 상태에도 부드럽고 익혀도 부드럽다. 얼핏 보기에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연체동물이다. 그런데 엄청난 영양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과학적인 성분 분석을 하기 앞서 옛 어른들 말씀을 따라가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오뉴월에 일하다 쓰러져 누운 암소한테 산낙지 한 마리 먹이면 벌떡 살아난다" "노산에 젖 안 나는 임산부도 뻘낙지 한 마리 고아 먹이면 젖이 난다" "여름에는 주꾸미요 가을에는 뻘낙지다"
낙지는 생김새와 잡는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머리가 작고 다리가 가늘다는 세발낙지, 갯벌에서 잡는다는 뻘낙지, 맨손으로 잡는 손낙지, 가래를 이용해서 잡는 가래낙지, 야간에 횃불을 들고 나가 잡는 횃불낙지, 통발을 놓아 잡는 통발낙지 등등. 그러나 낙지의 생김새는 엇비슷하다. 살아온 지역에 따라 무안낙지, 신안낙지, 해남낙지라 부르기도 한다. 70년대까지는 해남 세발낙지가 가장 유명했는데 간척사업을 한 이후 그 명성을 잃었다. 충청도와 경기도 갯벌에서도 낙지를 잡지만 아직 전국에 이름을 떨친 경기지역 낙지는 없다.
낙지는 먹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 요리도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고급요리가 연포탕이다. 육수에 양념을 넣어 끓인 후 산낙지를 살짝 데쳐내서 먹는 요리다. 소고기와 함께 조리하는 갈낙탕이 있고, 산낙지를 칼로 쪼아서 먹는 탕탕이, 주로 냉동 낙지를 이용하여 고추장 양념과 철판에 익혀 먹는 철판구이, 낙지를 나무젓가락에 감아서 구워낸 호롱이 등등.

가을에 미식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낙지는 산낙지와 연포탕이다. 영암군 독천에 있는 연포탕 전문음식점에서 처음 연포탕을 먹었다. 산낙지가 부족하여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개발한 것이리라 짐작했다. 연포탕에 들어 있는 무와 파, 양파, 바지락 따위가 더 맛있고, 시원한 국물맛이 그만이었다. 게다가 국물을 먹고 나면 참기름과 김가루와 미나리 등을 넣고 볶아주는 볶음밥이 여간 고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포탕을 먹기 전에는 거의 산낙지를 통째로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서 먹었다. 세발낙지 한 마리를 집어서 먼저 머리를 입으로 물고, 발을 손으로 훑어 내리면서 오물오물 씹으면 향긋한 갯내와 낙지냄새가 입안에 가득 고인다. 낙지를 삼킨 후 된장과 풋마늘을 더 입에 넣고 씹으면 몸이 으쓱해진다.
낙지는 6월부터 7월까지 산란기다. 이때는 산낙지를 잡지도 말고 먹지도 말아야 한다. 그 무렵 산낙지는 알을 낳고 새끼가 부화하기를 기다리던 늙은 어미일 가능성이 높다. 낙지는 1년생이고 하등한 연체동물이라 알을 낳은 후 새끼들이 부화할 무렵 수명을 다하고, 부화한 새끼들이 죽은 어미의 살을 뜯어먹고 자란다. 그래서 여름 낙지는 힘도 영양도 모자란다. 하등동물인 낙지는 새끼들끼리 서로 잡아먹기도 한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순식간에 몸집을 키우는데 3개월 정도 자라면 머리가 어른 엄지손가락만 하다. 이때가 가장 부드럽다. 낙지의 산지 사람들은 이 부드러운 낙지를 익혀 먹으면 낙지 먹을 줄 모른다고 흉본다. 그래서 산낙지를 선호하고, 연포탕을 만들어 먹을 때도 1분 이내로 살짝 데쳐서 먹는다.
글 박상대 월간 '여행스케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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