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지가 다가온다. 올해는 22일이다. 동짓날 먹는 음식으로 팥죽이 있다. 동지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사람도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으려한다. 고대시대 동지는 겨울이 끝나는 날(冬至) 즉,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설날에 버금가는 큰 날이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아이들이나 아랫사람을 보고 "동지 잘 쇴냐?"고 인사를 건넸다.
동짓날 먹는 팥죽에는 새알이 들어 있다. 새알은 쌀가루를 반죽해서 만드는데 가난하던 시절 딱 하루 팥죽에다 쌀로 만든 새알을 넣어 특식을 만들어 먹은 것이다. 팥을 삶아서 작은 절구통이나 확독에 갈고, 다시 채에 밭아서 거친 껍질을 걸러내고 국물을 끓인다. 팥국물이 잘 끓으면 쌀가루로 동그랗게 만든 새알을 넣고 조금 더 끓인 후 각자 그릇에 떠서 먹는다. 설탕을 한 숟가락 정도 넣으면 더 달콤하다.
그런데 왜 동지에 팥죽을 먹었을까? 오래 전해온 이야기는 새해가 시작될 때 잡귀를 물리치고 한해 동안 건강하게 살자는 기원의 뜻이 담겨 있었다. 중국 전설에 의하면 전염병을 몰고 다니는 역귀(疫鬼)가 팥죽을 싫어해서 대문 밖에다 팥죽을 뿌리고 가족이 나눠 먹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의 영조는 그런 미신을 믿지 말라고 하였고, 훗날 과학자들은 팥죽이 양기를 보강해 주며 건강에 이롭다는 근거를 내놓았다. 피로해소, 혈관질환과 심장질환 예방, 췌장과 신장기능 강화, 나트륨 체외배출, 변비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것.
서울 광장시장에 가면 팥죽을 파는 가게가 몇 집 있다. 종로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 종종 팥죽을 먹으러 다닌 기억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겨울과 여름에 팥죽을 먹었다. 겨울에는 동지팥죽을 먹고, 여름에는 팥칼국수를 먹었다. 날씨가 궂은 날은 팥칼국수를 얻어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팥은 양기를 보충해주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린 후 날씨가 궂은 날이면 기력이 약해진 남정네들이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찬바람이 불자 회사 앞 칼국숫집에서 팥 삶는 냄새가 난다. 이집 주인은 팥을 한꺼번에 삶아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손님이 찾을 때만 팥칼국수를 판다. 직접 손으로 반죽하여 손으로 썰어서 만들어주는 칼국수 맛이 유난히 맛있다. 오늘 점심때는 팥칼국수를 먹어야겠다.
글 박상대 월간 '여행스케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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