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 변화를 주고 싶었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가수 양파는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레퍼토리를 손쉽게 가져가기보다 과감한 도전을 택했다.
지난 8일 발매된 새 싱글 ‘끌림’을 듣고 있으면 '양파 맞아?'라는 생각이 들게 할만 큼 그는 목소리와 창법에 적지 않은 변화를 줬다. 인생의 절반을 노래와 함께 해온 양파. '끌림'에서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그의 또 다른 매력이 담겨있다. 오랜만에 신곡으로 돌아온 양파를 최근 서울 홍대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 '끌림' 다시 만난 연인들의 떨림 표현, "일상적인 이야기 자연스레 풀어내"
'끌림'은 양파의 소속사 RBW 대표이자 작곡가 김도훈이 만든 브리티시 팝 발라드 곡이다. 그리운 사람과의 재회를 기다리면서 느끼는 설렘, 자연스러운 끌림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설레임 참 오랜만의 이 느낌 다 잊었던 좋은 느낌 첨 봤을 때 가슴 뛰던 니 얼굴이 나 선한데 보고 싶어 어제 너의 한마디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냥 문득 전화했어 지금 뭐해 얼굴이나 볼래'처럼 솔직하고 담담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작사를 직접 한 양파는 "주변 사람들의 연애 고민이나 결혼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노래로 풀어냈다"며 "곡 분위기를 살리는 가사이기도 했지만, 나와 함께 사는 세대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하면서 팬들에게 받은 것이 정말 많기 때문에 어떻게든 감사한 마음을 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곡은 '애송이의 사랑','아디오','사랑 그게 뭔데','아파 아이야' 등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애절한 기존 히트곡과 다르게 잔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원래 제가 해왔던 한국형 R&B나 정통 발라드처럼 서사가 뚜렷하고 내지르는 스타일의 곡은 아니에요. 노래의 메시지를 담담하게 전하는데 중점을 뒀어요. 흔히들 알고 있는 양파의 창법으로 불렀다면 이런 느낌은 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누구지? 많이 들어 본 것 같긴 한데, 양파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궁금증과 신선한 기분을 주고 싶었어요"
양파는 "매번 앨범을 낼 때마다 기존에 하던 음악을 고수할 것인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를 줘야 할지 항상 고민한다"며 "오랜만에 컴백했고 시장도 많이 변했기 때문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도 예전보다 줄어든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변화를 주는 게 내 스스로도 좋은 도전이 될 것 같았다"고 신곡 작업에 중점을 둔 부분을 설명했다.
그는 "'끌림'을 들은 지인들이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조언을 해줬는데, 평소 까칠한 사람들도 대부분 좋은 이야기를 해줘서 기쁘고 만족스럽다"며 미소를 지었다.
■ "차트 순위 연연하지 않아,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어"
점점 소모적인 음악으로 변해가는 현 시장에서 한 가지 노래로 꾸준한 인기를 얻기란 쉽지 않다. '끌림'은 발매 첫날인 8일 주요 음원사이트 90위권에 안착했다.
1997년 '애송이의 사랑'으로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수차례 차지하고, 올해의 가수상까지 수상하는 등 정점의 자리에 올랐던 양파임을 떠올리면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기 보다 천천히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양파는 "처음 노래가 나올 때 차트 순위에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막상 그러기가 쉽지 않더라"며 "회사에서는 '월드스타 비도 100위 안에 못 들었다'면서 차트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성과라고 해줬지만 괜히 고개가 숙여졌다"고 웃었다.
"'애송이의 사랑'처럼 대단한 인기를 얻기보다 그저 차트 안에만 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음악을 쉰 기간도 길었고 트렌드도 바뀌다보니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보거든요.차근차근 과정을 쌓아 가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 소속사 분쟁→긴 공백기→상처,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이번 신곡은 2014년 3월 선보인 싱글 ‘l.o.v.e' 이후 무려 3년 9개월만의 공식 활동이다. 양파는 한동안 소속사와의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서 본의 아니게 공백기가 긴 가수로 지내왔다. 그는 힘들고 지쳤던 순간을 버텨내며 노래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한층 성숙해졌다.
양파는 "회사와의 갈등이 계속되다 보니까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상처가 생겼다"며 "그래서 홀로서기를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위축되고 작아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15년 MBC '나는 가수다'에서 손을 내밀어주셨다. 소속사 없이 활동하던 나를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제작진과 지인들을 보면서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떠올렸다.
"사람이 어려움을 견디면서 성장하듯,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약한 면이 있었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몰아세울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부분에서 좀 더 여유로워졌고 나의 한계도 그냥 인정하려고 해요. 이제 선택과 집중을 해서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꾸준히 음악 하는 게 목표에요"
그는 "'끌림'은 사실상 정규 6집 앨범의 첫 번째 노래다. 1~2개월 간격으로 곡을 발매해서 1년 안에 열 두곡을 채워보기로 했다"며 "지금 준비 중인 것도 벌써 3~4곡 가량 된다"고 밝혔다.
■ 데뷔 20년차 가수 "언제나 기다려준 팬들 덕분"
1997년 '애송이의 사랑'으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양파는 단숨에 정상급 여가수로 자리매김했다. 데뷔하자마자 전성기를 누렸던 셈이다. 온전히 20년의 활동 기간을 채우지 못한 아쉬움도 남지만, 늘 자신의 곁을 지켜준 팬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후배들이 저를 보러 교실에 자주 와서 친구들이나 학부모들한테 욕도 많이 먹고 곤란한 경우가 생겼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아이돌이 길을 제대로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였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데뷔를 했고, 수능시험 준비와 가수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까 하루에 한 두 시간씩 자고 그랬는데 굉장히 벅찼고 늘 지쳐있었어요"
그는 "요즘 친구들은 뭐든지 동시다발적으로 잘하는 것 같다. 확실히 뇌 용량이 크다는 걸 느낀다"며 "나는 그렇게 못했던 것 같아서 부러울 때가 많다"고 했다.
양파는 "교복을 입고 만났던 팬들이 시간이 흘러 부모가 돼서 찾아오는데 기분이 남다르다. 친한 친구처럼 서로의 고민이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면서 "공백기가 길었던 나를 버리지 않고 한결 같이 기다려준 사람들인데 누군가를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찾아주고 기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들 때마다 팬들의 그런 마음이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또 "이제 노래도 자주 들려드리고 팬들과 더 자주 만나면서 소통하겠다"고 덧붙였다.
■ "양파처럼 까도 뭔가가 계속 나오는 가수 될 것"
1997년 데뷔 당시 풋풋한 고등학생이었던 양파는 내년이면 어느덧 마흔이 된다. 그러나 늘 새로운 음악을 향한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무한한 열정 앞에서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20년 보다 앞으로의 20년이 더욱 기다려지는 양파의 '제2의 전성기'가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그는 "어떤 것에 대한 꿈과 열정이 있는 한 그 젊음은 계속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세대와 음악을 통해 끊임없이 교류하고 싶다"며 "그동안 20년 보다 앞으로 20년 사이에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노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어렸을 때 '양파'라는 이름이 너무 싫었는데 이제 이 이름이 나한테 큰 힘을 주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요즘엔 '양파'가 정말 좋고 사랑스러워요. 양파처럼 까도 여전히 뭔가가 나오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사진=RBW 제공
김상록 기자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