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내에는 횟집만큼 장어요리집이 많이 있다. 그 해 겨울, 여수시청에 근무하는 친구가 장어탕 집으로 안내했다. 갯장어를 토막 내서 배추 시래기와 함께 끓인 탕이었다. 장어머리를 삶은 국물에, 된장으로 버무린 배추 시래기ㆍ숙주나물ㆍ고사리ㆍ토란대, 그리고 들깨가루와 쑥갓을 고명처럼 올려놓았다. 장어구이만 먹어온 도시 사람에게 장어탕은 고소한 별미였다.
장어는 힘이 세다. 맨손으로 장어를 잡아본 사람들은 장어의 미끈거림과 강력한 힘을 잘 알 것이다. 청소년기에 동네 앞 하천에서 어쩌다 장어를 잡으면 두 손으로 힘껏 쥐어도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소년들은 손으로 잡은 장어를 입으로 물고 물 밖으로 나오곤 했다. 그런 힘을 경험한 사람들은 장어를 먹으면 강력한 힘이 내 몸에 축적될 줄 믿는다. 보릿고개를 넘길 때는 물론 찬바람이 불면 겨울을 잘 지내기 위해 미리 장어 몇 마리를 구어 먹었다.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입에 퍼 넣었다.
장어에는 칼슘이 풍부해 여성들의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남성의 정력을 향상시키는 성분과 여성들의 피부에 탄력을 주는 성분, 아이들의 발육에 도움을 주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장어에는 성인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고,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장어에 관한 작은 상식 한 토막. 장어는 눈이 없고, 더듬이로 먹이를 찾는다. 입은 있으나 씹지를 않고 모든 먹이를 흡입하여 뱃속에서 소화시킨다. 몸의 표피에 있는 180여 개 구멍에서 끈적끈적한 진을 내품어서 자기 몸을 보호한다. 그래서 노련한 주방장도 맨손으로 다루기가 쉽지 않다.
장어탕은 통영이나 고창, 목포에서 끓이는 방법이 다소간 차이가 난다. 머리는 대부분 잘라낸 뒤 푹 고아서 육수를 낸다. 숙주나물과 풋고추, 대파, 다진 마늘은 거의 공통으로 사용한다. 비린내를 잡기 위해 생강을 넣기도 한다.
장어탕은 근대 이전에는 주로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었다. 체통을 따진 양반들은 못생긴 생김새와 끈적거린 액체가 흉측하다 하여 먹지 않았다. 결국 서민이나 머슴들이 장어를 먹고 밤낮으로 힘을 내서 일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글 박상대 월간 '여행스케치' 대표 psd082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