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는 반드시 내가 연기해야 될 것만 같은 운명적 끌림이 있었어요." 부산 출신 배우 서은수(24)가 지난 11일 종영한 KBS2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 서지수에게 가지는 애정은 남달랐다. 이름, 성격, 나이 등 자신과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첫 출연한 주말드라마에서 선배 연기자들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줬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라이징 스타 서은수를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아직 신인인데 이런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서은수는 지난 8개월 동안 서지수로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질투의 화신' '낭만닥터 김사부' '듀얼' 등 주로 미니시리즈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에게 첫 주말극 도전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데뷔 3년차 배우가 주말드라마 주연을 꿰차는 건 흔치 않은 경우. '황금빛 내 인생'은 서은수의 연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촬영에 집중하며 지냈어요. 길고 힘들었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니까 행복하고 그리운 기억만 남는 것 같아요. 얼마 전 괌으로 포상휴가를 갔다온 후 집에 들어가는 순간 이제 정말 다 끝났다는 실감이 나더라고요."
"저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에요. 작품, 사람 등 모든 게 복 없이는 될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신인으로서 쉽게 받을 수 없는 기회였음에도 저를 선택하고 중요한 역을 맡겨주신 분들에게 늘 감사하죠. 소현경 작가님이 쓴 '찬란한 유산' '내 딸 서영이'를 챙겨봤어요. 작가님 특유의 디테일한 감정선을 좋아해서 이번 작품을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는 "솔직히 시청률이 40%가 넘을 정도로 잘 나올 줄 예상 못했다”면서도 “좋은 사람들과 작품을 하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고 말했다.
■ "지수만큼 안타까운 캐릭터 없다고 생각해요"
서지수는 치위생과를 졸업한 뒤 별다른 욕심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던 낙천적인 인물이었으나 알고 보니 재벌가 해성그룹의 딸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며 내적, 외적 갈등을 겪는다.
해성가로 들어갔지만 자신을 잃어버린 친부모 최재성(전노민), 노명희(나영희)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밥을 먹을 때 식사 예절을 지적받자 "너무 웃기다"며 조롱하는가 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 친딸을 찾은 후 기뻐하는 최재성에게 쌀쌀맞은 태도로 일관했다. 서지수가 점점 밉상이 된다는 지적도 늘어났다. 하지만 서은수의 생각은 달랐다.
서은수는 "그 누구보다 지수가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믿고 사랑했던 사람들한테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으면 그렇게 행동했을지 공감이 가더라"며 "실제라면 더 심하게 해도 티가 나지 않았을 텐데 드라마라서 지수의 그런 면들이 더 극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극 초반 연기력 논란에 휩싸인 순간도 있었다. 부정적인 댓글 때문에 적잖이 흔들렸지만 그럴 때 마다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 준 이들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는 "지수의 감정이 중간에 큰 폭으로 변하니까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게끔 표현해야 할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투정, 애증, 분노, 사랑 등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내면서 결국 '나 좀 봐줘, 나 좀 사랑해줘'라고 말하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안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그만큼 응원해주시는 사람도 있었기에 힘을 냈어요. '지수가 우는 걸 보면 저도 항상 울게 돼요'라는 댓글이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연기자로서 굉장히 가슴 벅찬 일이에요. 이제 더 이상 악플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요."
■ "지수·혁 커플 좋아해주는 분들 있어서 신기했죠"
서지수, 선우혁(이태환) 커플은 풋풋하고 알콩달콩한 러브라인을 그리며 드라마의 메인 커플인 서지안, 최도경(박시후) 만큼 시청자들의 관심과 애정을 한 몸에 받았다. 드라마가 끝난 후 실제 사귀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서은수는 "얼마 전 내가 이태환과 실제로는 절대 사귈 일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 기사가 나왔는데, 그렇게 '단호박'처럼 이야기한 건 아니었다"고 웃어 보인 후 "혹시라도 태환이가 기분 나빴다면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절대'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며 멋쩍어했다.
그는 "태환이와 정말 달달한 커플을 보여주자고 이야기했다.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실제로 좋아하나'라는 착각이 들게끔 하고 싶었다"며 "처음 지수와 우혁이가 연애를 시작할 때 설레는 순간이 가장 좋았다. 우리 커플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다는게 신기하고 감사했다.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실제 이상형은 잘 웃는 사람이에요. 취향이랑 개그코드가 잘 통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연애를 하고 싶어요."
■ "밝고 자유로운 성격, 사랑 많이 받고 자란 막내딸이에요"
이날 서은수는 차분하고 정돈된 답변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기와 관련된 질문이 나올 때는 진지한 눈빛으로 프로다운 분위기를 나타내다가도,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소녀처럼 해맑고 쾌활한 20대 청춘으로 돌아왔다.
"실제로는 극 초반의 지수처럼 해맑고 자유로운 편이에요. 허당기도 조금 있어요. 중학교때 부모님한테 '한번 사는 인생 내 마음대로 살게 해줘'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꿈 많고 자유로운 아이, 사랑 듬뿍 받는 막내딸로 자라왔어요. 지수에게 지안이가 있는 것처럼 저한테도 분신 같은 언니가 존재한다는 게 든든해요. 처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언니가 저를 여러 방면으로 신경 쓰고 챙겨줬어요. 부모님은 제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나오면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너무 기뻐하세요. 딸 자랑하기 바쁘셨던 8개월이었을 거예요."
그는 "사람들과 친해지거나 감정이 격해지면 톤이 올라가고 억양이 강하게 바뀐다"며 "그럴 때는 사투리가 나올까봐 일부러 말을 안한다"고 웃었다.
■ "이제 작은 언덕 하나 넘었을 뿐, 아직 황금빛은 오지 않았어요"
시청률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현재에 만족할 수 없다고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연기 열정을 지닌 서은수. 그가 꿈꾸는 '황금빛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진다.
"이제 작은 언덕을 하나 넘은 상태라고 생각해요. 한 고비 넘겨서 쉬어가는 그런 순간이요. 아직은 갈 길이 너무 멀고 황금빛은 오지 않았다고 봐요. 저기 언덕을 넘으면 보이지 않을까요. 일단 올라가야 황금빛일지, 잿빛일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황금빛 내 인생'을 촬영하면서 서지수라고 불리는 게 너무 좋았는데 지금은 안 그러니까 조금 이상하기도 해요. 작품 할 때 마다 캐릭터 이름이 쌓여서 다양한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가능성 있고 앞으로도 계속보고 싶은 배우가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차기작에 대한 바람도 나타냈다. "'서은수한테 이런 면이 있었어?'라고 느낄 정도의 파격적인 변신을 해보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도 좋고, 보기보다 털털한 면이 많은데 그런 것을 보여드릴 기회가 꼭 왔으면 좋겠어요."
사진=UL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상록 기자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