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태리의 마음에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더라고요. 좀 감싸고 싶었어요."
걸스데이의 멤버이자 배우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유라는 최근 종영한 KBS2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에서 귀여운 악역 진태리를 연기한 소감을 이렇게 털어놨다. 진태리는 한 때 잘 나갔던 톱스타였지만 지금은 한 물 간 배우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
2012년 작은 역할로 시작해 어느덧 6년차 배우가 된 유라에게 이번 역할은 첫 악역이었다. 하지만 진태리는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면모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지상파 첫 주연에 대한 소감을 묻자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지금도 부르면 촬영장에 나가야 할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큰 갈등은 없지만 잔잔한 이야기를 통해 따스함을 전달한 '라디오 로맨스'는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마니아 층을 사로잡은 작품. 이런 극의 성격 덕에 유라가 연기한 진태리는 '절대악'이라기보다는 정감 가는 '소악당' 같은 느낌이었다.
"밝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분명히 미운 면이 있지만 보는 사람이 태리의 편이 되고 싶게끔 나름대로 노력했어요. 센 대사가 많긴 했지만 어리바리 어설픈 느낌을 넣기 위해 특유의 밝은 성격을 섞어봤어요. 영감을 받을 캐릭터를 찾다보니 온갖 느낌이 섞여버리더라고요. 부담도 있었지만 좋은 도전이었어요."
진태리의 첫 등장은 2회였다. 안 그래도 미용실에서 기분이 나쁜 상태로 앉아있는데, 자기를 대놓고 무시하는 후배 여배우를 따라가 인사하라고 은근하게 협박하는 장면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해 어딘가 짠한 느낌을 자아내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서글픔을 안겼다.
"저의 첫 모습이자 가장 고민이 많았던 장면이에요. 마냥 세게만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아서 50가지 버전으로 준비했어요. 말투, 톤, 분위기 다 다르게 해서요. 집에서 밥 먹다가, TV보다가 '야 후배님' 같은 대사도 뜬금 없이 쳐 봤어요. 상황에 따라 태리가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결국 중간으로 가서 '더 세게 했어야했나' 후회했는데, 감독님이 잘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진태리도 유라도 둘 다 연예인이다. 다른 점이라면 유라는 아직 가수로도 배우로도, 가끔씩은 예능인으로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라는 진태리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알았다.
"아직 경험은 안 해봤지만 언젠가 자연스럽게 올 사실이니까요. 하도 짠한 캐릭터다보니 제가 감싸고 싶었어요. 상처도 좀 덜 받았으면 좋겠고. 걸스데이도 요즘은 활동이 뜸하잖아요. 진태리와 완전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미뤄볼 수 있었어요. 평상시에 생각도 좀 했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유라의 해결책은 시청자들의 또 다른, 그리고 자신만의 니즈를 끊임없이 찾는 것이다. 그녀는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성공은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달려나갈 수 밖에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태리처럼 가짜 열애설을 터트리진 않는다"고 농담도 덧붙였다.
진태리가 귀여웠던 건 극 후반 보여줬던 김준우(하준)와의 로맨스 덕분이었다. 연애에 둔감한 시청자조차 '저렇게 싸우다 정들겠네'를 느낄 정도로 맞붙기도 했고, 가슴 저린 과거 에피소드도 곁들여지며 마냥 행복한 커플이 아닌, '현실 연인 케미'를 선보였던 것. 함박웃음이 지어지는 키스신도 인상적이었다.
"그때 하준씨가 '으른(어른) 키스 할거야? 짧은 키스 할거야? 선택해'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웃겨서 '짧게 한 번 하고, 눈빛 받고, 그 다음에 으른 키스 가자'고 말했죠. 그래도 그게 약하게 한 편이에요. 하하. 그렇게 틱틱대면서 싸우는 커플 연기 재미있었어요."
이렇게 진태리를 마무리 한 유라는 자신의 연기를 어떻게 볼까? 그녀는 "털이 삐죽삐죽 선다"고 표현했다. 귀여운 면모가 있긴 하지만 처음 선보이는 악역이기에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온갖 연구를 다해봤지만 모니터링 할때는 민망함에 진저리를 쳤다고. "그래도 19살 때 처음 출연했던 작품은 촬영 직후 한 번 본 것 빼곤 도저히 못 보겠어요. 그래도 최근 촬영한 건 잘 보는 편이에요. 하하."
이번엔 지상파 주연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지만 유라는 데뷔 9년차 가수이기도 하다. 때문에 무대 위와 촬영장에서 느끼는 감정들도 다르다. 그녀는 "사실 무대에선 팀이기 때문에 중압감 면에서 차이가 있다"라며 "연기는 상대가 있지만 한 장면을 온전히 혼자 이겨내야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어려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뭐든 기분은 너무 좋다"고 덧붙이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걸스데이의 활동을 기대하는 팬들도 많다. 이에 대해 유라는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좋은 노래 기다리고 있다. 배우도 좋지만 걸스데이도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다"며 둘 다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아직 다음 활동이 정해지지 않은 유라는 당분간 공부와 휴식을 병행할 예정이다.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유라는 "왜 이렇게 어렵냐"면서도 "제가 연예인을 안 하더라도 영어는 꼭 필요하다는 걸 느껴서 이제 조금씩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최근 집중하는 건 볼링이다.
"얼마전 200점을 달성했어요. 그런데 제가 치는 볼링장을 벗어나면 아마 낮아질거예요. 지난 '아육대'에서 볼링 부분이 신설돼 나가고 싶었는데 저처럼 '약간' 치는 사람은 자격이 안돼 아쉽더라고요. 에버리지 200이 되면 프로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유라의 계획은 일단 공부와 휴식이지만 좋은 작품이 있다면 달려들 준비는 언제나 돼 있다. 역할은 물론 비중도 가리지 않을 예정이다. 특히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더욱 가열차게 임할 예정이다.
"제 성격과 반대되는 인물을 표한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드라마 '킬미힐미'처럼요. 그런 것에 매력을 느껴요. 그래서 '유라도 다양한 역을 소화할 수 있구나'라는 칭찬 듣고 싶어요. 보시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연기력도 갖추고 싶어요. 물론 희망사항이지만 노력해야죠."
김상혁 기자 sunny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