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 남쪽 미야자키현 일주] 탁 트인 태평양 바다 품고… 짙은 숲 내음 마시며…노닥노닥 쉼이 있는 열도의 봄

입력 : 2018-04-04 19:15:28 수정 : 2018-04-09 10: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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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야자키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이색 볼거리로 자리 잡은 선멧세니치난의 '모아이 석상' 7개. 칠레 이스터섬 부족의 허가를 받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설치한 복제품이다.

날씨는 잔뜩 흐렸다. 비는 오락가락했다. 뱃머리 쪽에 붙은 방의 창을 가린 커튼을 펼쳤다. 시원한 바다 풍경이 나타났다. 파도는 일렁이고 있었지만 높지는 않았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은 덕이었다. 게다가 배가 워낙 커서 흔들림은 심하지 않았다. 고려훼리가 운영하는 '뉴카멜리아'다. 최대 승객 647명을 태우고 최대 시속 40㎞로 부산~일본 후쿠오카를 오가는 2만t급 배다.

승객들은 서둘러 방을 찾으러 다녔다. 단체실도 있고, 1~2인실도 있었다. 갑판에서는 이미 짐을 푼 승객들이 바람을 쐬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일본 여행을 떠난다는 즐거움에다 배에서 하룻밤을 잔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배는 오후 10시 넘어 출항했다. 파도의 미동을 요람의 흔들림 삼아 잠을 청했다.

수백 년 수령 조엽수 즐비한 '아야'
맑은 물로 관광객 부른 '주센노도리'

빨래판 닮은 암반 유명한 '아오시마'
꽃향기 넘치는 보타닉가든서 힐링

이스터섬 허락 받은 복제 모아이 석상
행운 비는 이들과 하늘·바다 '이색'


휴대폰 알람 벨 소리에 눈을 뜨니 어느새 오전 7시였다. 부지런한 승객들은 벌써 짐을 꾸려 하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둘러 여행용 가방을 챙겼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후쿠오카 국제여객터미널 앞에서 버스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일본 규슈 남쪽 미야자키다.

■유네스코 에코 파크로 지정된 '아야'

버스가 두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아야(綾) 조엽수림지대'였다. 유네스코로부터 에코 파크로 지정된 곳이다. 1960년대 중반 일본에서는 조엽수(온대성 상록활엽수) 벌채가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아야초(綾町) 주민들은 벌채를 결사반대해 삼림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곳에는 수령이 수백 년 된 나무가 즐비한데다 조엽수가 일본에서 최대 규모로 밀집해 있다.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최북단 북해도까지 자생하는 다양한 수종이 이곳에서 골고루 자란다.

아야 조엽수림지대에는 삼림 세러피 코스 세 곳이 있다. 거리가 1~3㎞ 정도로 짧아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힐링 산책을 할 수 있다. 무작정 걷기만 한다면 30분~1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다. 미야자키현 해외유치부 미코시 미쓰히로 과장은 "푸르른 산을 바라보고 명상하고 새소리를 들으면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며 걷는다면 3시간 정도 걸린다. 지금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삼림 세러피의 명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아야(綾) 조엽수림지대'에 설치된 현수교.
삼림 세러피 코스의 출발 지점은 데루하 대현수교였다. 높이가 142m여서 사람이 걸어서 지나는 현수교로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마침 이날 날씨가 흐려서 대현수교는 짙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마치 영화 '쥐라기 공원'의 공룡이 사는 원시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신비감마저 주는 분위기였다. 제법 출렁이는 다리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안개 사이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와 제법 많은 물이 흐르는 강이 보였다. 다행히 다리 건너편에는 공룡이 기다리지 않았다.

2시간 정도 삼림을 걷다 보니 배를 타고 오면서 쌓였던 피로의 독소가 말끔히 몸 밖으로 배출되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버스가 다시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슈센노모리(酒泉の杜)'였다. 이름대로 풀이하면 '술이 샘솟는 마을'이다. 입구에는 수신(水神)을 모시는 조그마한 사당이 있었다. 수신의 위패 앞에는 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한 부부가 차를 몰고 오더니 물통 여러 개를 꺼내 사당 앞의 샘에서 물을 담아갔다. 맑고 깨끗한 물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 나라나 똑같은 모양이다.
'주센노도리' 입구에 있는 샘물.
주센노도리는 인구가 줄어드는 시골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업해 일궈낸 결과물이다. 지금은 매년 수십만 명이 찾아오는 인기 명소가 됐다. 이곳에는 와인제조공장과 온천, 숙소는 물론 각종 식당, 판매점 등이 있다. 유리 공예품 공장과 전시장도 있다. 예술적 수준의 유리 공예품 가격을 보았다. 깜짝 놀랐다. 가장 비싼 게 1000만 엔(1억 원)을 넘는다.

지친 일행을 태운 버스는 미야자키 시내의 마릭스호텔로 달려갔다. 일본 곳곳이 다 그렇지만 미야자키도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마침 마릭스호텔도 대형 온천 두 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피곤함에 찌든 사람들은 방에 짐을 풀기 무섭게 온천으로 달려갔다.

■도깨비 빨래판으로 유명한 '아오시마'
아오시마섬을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모양의 암반인 '도깨비 빨래판.' 왼쪽에 있는 작은 섬이 일본 건국신화와 관련 깊은 신사가 있는 아오시마섬이다.
다행히 여행 둘째 날은 날씨가 쾌청했다. 기온은 16도 안팎이었고 바람은 제법 시원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겨 작은 섬 아오시마로 향했다. 이 섬은 '도깨비 빨래판'과 아오시마 신사로 널리 알려졌다. 둘레가 1.5㎞에 불과하다. 에도 시대까지만 해도 성역으로 받들어져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곳이다. 섬에는 아열대 식물인 비로 야자수가 3000그루 이상 자라고 있다. 다른 아열대 식물 300여 종도 섬 전체를 덮고 있다.

'도깨비 빨래판'은 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모양의 암반이다. 마치 해변에 빨래판을 펼쳐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0만~2400만 년 전 해상에 규칙적으로 퇴적한 사암과 이암의 상층이 파도에 침식돼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암반은 마치 공룡들이 발로 밟고 지나간 듯하다. 어떤 암반은 물을 담은 접시 모양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암반은 마치 태양열 발전 전지판을 바다에 세워놓은 듯하고, 적군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방책을 설치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아오시마 신사는 야마사치히코와 도요타마히메를 주신으로 모신 곳이다. 야마사치히코는 <일본서기>에 일본 왕가 계보의 첫 조상으로 나오는 니니기노미코토의 아들이다. 일본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의 조상이기도 하다. 아오시마 신사는 '중매의 신사'로 알려졌다. 젊은 연인이나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미야자키는 일본 프로야구 구단들이 겨울철 전지훈련지로 많이 찾는 곳이다. 2006년 이승엽이 활약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이곳에 왔다. 구단은 훈련에 앞서 아오시마 신사를 참배했다. 이승엽은 국민 정서를 고려해 참가하지 않았다.
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오시마 보타닉 가든'.
아오시마 입구에는 '아오시마 보타닉 가든'이 있다. 다양한 색으로 피어난 꽃들이 앞다퉈 달콤한 향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가족, 연인들은 느긋하게 봄바람을 따라 퍼지는 꽃향기를 맡으면서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미야자키가 일본 휴양도시로 불리는 이유를 알 만했다. 보타닉 가든에는 온천, 호스텔, 식당 등 편의시설이 골고루 갖춰져 있어 휴양을 즐기는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다. 보타닉 가든 오른쪽에는 미야자키에서 가장 넓은 해변에 만들어진 해안 산책로가 있다. 일렬로 늘어선 야자수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멋진 드라이브 코스 '니치난 해안로'

버스는 220번 도로 니치난 해안로를 따라 달렸다. '니치난 피닉스 로드'라는 별명을 가진 드라이브 코스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태평양과 아열대식물이 연출하는 남국의 분위기가 상쾌하게 이어져 '일본 도로 100선'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이 도로를 따라 달리면 선멧세니치난, 우도신궁, 미야자키의 남쪽 끝인 도이미사키곶을 즐길 수 있다.

버스 왼쪽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태평양이었다. 눈 앞을 가리는 섬이 하나도 없다. 청잣빛 바다는 마치 수년 전 그리스 여행 중에 만났던 에게해 같았다.

태평양을 마주 보는 산 중턱에 임해 공원이 하나 서 있다. 선멧세니치난이다. 이곳은 대형 모아이 석상 7개가 나란히 서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칠레 이스터 섬에 있는 석상을 모방한 것이다. 이스터섬 부족 장로회의 특별 허가를 받아 전 세계 모든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모아이 석상을 복제해 세웠다고 한다. 모아이 석상 7개는 모두 '행운'을 상징한다. 석상을 마주보고 섰을 때 왼쪽부터 사업, 건강, 연애, 여행, 결혼, 금전, 학업운이라고 한다.
에도 시대 모습을 간직한 '오비성하마을'.
버스는 선멧세니치난을 지나 니치난 해안로를 벗어난 뒤 오비성하(城下)마을로 향했다. 오비성하마을은 16세기 말부터 3세기 동안 번성했던 현지 영주의 저택과 성으로 구성돼 있다. 성은 1873년 완전히 허물어졌다. 일본 정부는 1978년 100년 된 오비 삼나무를 이용해 정문을 복원했다. 정문 인근에는 영주를 모시는 사무라이들이 살던 집들이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비성하마을은 문화재를 둘러보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주변에 찻집, 식당, 잡화점 등 아기자기한 가게가 많아 여유롭게 거닐면서 산책할 수 있는 곳이다. 분위기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후쿠오카의 다자이후덴만구 입구에 길게 늘어선 가게들과 느낌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오비성하마을 관광안내소에 가면 '아유미창 지도'를 준다. 지도에는 쿠폰 다섯 장이 붙어 있다. 지정 점포를 찾아가서 카스텔라, 젓가락, 배지 등 기념품과 바꿀 수 있는 쿠폰이다.

후쿠오카로 서둘러 돌아와 이제 부산행 뉴카멜리아에 몸을 실었다. 따뜻한 날씨와 맑고 신선한 공기, 푸르고 광활한 태평양과 건강하고 싱싱한 산, 그리고 이색적인 볼거리와 풍부한 먹을거리. 규슈 남쪽 미야자키의 온화한 모습이 대한해협의 푸른 파도 사이로 겹쳐 보였다.

미야자키(일본)/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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