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이제 특정 휴가철의 전유물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시간이 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한결같이 꼽을 만큼 여행은 로망이자 일상이 됐다. 여행의 시작은 장소 선정 등 자료조사, 서핑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장소'에는 여행지와 숙소가 모두 포함된다. 여행지에 의해 숙소가 결정되기도 하지만, 숙소에 따라 여행지가 바뀌기도 한다. 그만큼 여행에서 숙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중요해졌다. 이에 본보는 '여기어때'와 공동기획으로 '숙소큐레이터'라는 특이한 직함을 가진 전문가의 '특별한' 숙소 이야기를 시리즈를 게재한다.
일상에 지친 연인들의 주말은 조금씩 뻔해지거나 의무적으로 변해간다. 언젠가부터 주말엔 느지막이 점심을 먹은 후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하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 매일 치열했던 서로의 삶을 이해하면서도 매번 똑같은 패턴으로 흘러가는 주말이 서글퍼질 때쯤 우리는 119 14로 떠났다.
강과 산의 풍경에 갇혀 눈부신 고립을 자처한 하루였다.
서울에서 차로 1시간, 창문을 열면 산자락을 따라 굽어 흐르는 홍천강이 한눈에 담기고, 맑은 공기가 가슴을 채운다. 흔한 편의점이나 카페, 식당과도 제법 떨어져 있는 한적한 자연 속 둘만의 별장이다
119 14에선 어떤 방에 묵든 산과 강의 전망을 공평하게 누린다.
폴딩도어로 벽 한 면 전체를 개방할 수 있어 주방과 거실, 때로는 침실까지 아름다운 경치가 들어온다. 맑으면 맑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아름다운 창밖 풍경에 길이 사라질 만큼 비가 오거나 눈이 펑펑 내리길 바랐다. 속절없이 오래도록 갇혀도 좋은 곳이다.
지붕의 기울어진 면을 그대로 드러낸 천장 때문인지 다락방처럼 아늑한 느낌이 드는 침실이다. 흰 색 페인트로 칠한 벽과 천장, 매끄러운 대리석 타일로 꾸며진 침실 중앙에는 원목 프레임의 킹 사이즈 침대가 놓여 있다.
오묘한 컬러감의 패턴 타일로 꾸며진 욕실. 두 사람을 위한 더블 세면대도 마련돼 있어 양치를 하는 소소한 시간마저 공유하게 된다.
천연 대리석을 얹은 아일랜드 식탁이 있는 주방에선 오랜만에 배달 음식 대신 오붓한 한 끼 식사를 만들어 먹는다.
눈을 두는 곳마다 홍천강과 사시사철 푸른 산이 펼쳐진다. 탁 트인 풍경 앞에 머릿 속 고민거리는 사라진 지 오래.
119 14의 또다른 매력은 바로 노천 스파다.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개별 정원에선 계절에 상관없이 노천 스파를 즐길 수 있다. 따뜻하게 덥혀 놓은 스파에 몸을 담그자 묵은 피로가 가시는 듯하다. 두 사람이 들어가도 충분한 크기다.
야외 테이블에선 바비큐도 가능하다. 장을 따로 봐오지 않아도 사전 예약을 통해 한우 등심이나 목살 바비큐 세트를 저녁으로 맛볼 수 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푸짐한 만찬으로 배를 두둑하게 채울 수 있는 셈이다.
조식은 아침 9시 바구니에 담겨 룸 서비스로 제공된다. 바구니 안에는 직접 만든 치아바타 샌드위치와 갓 끓여낸 스프, 신선한 계절 과일과 커피 2잔이 정성스레 담겨있다.
따뜻하게 몸을 감싼 이불이 사그락거린다. 빳빳하게 다려진 헝가리산 거위털 침구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렸다. 지친 연인 사이에 필요한 건 투정이 아닌 한없이 게으른 하루. 산과 강, 두 사람뿐인 시간이 119 14에서 느리고 고요하게 흘렀다.
글/사진=양여주(숙소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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