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승우가 스크린 나들이에 나섰다. 박희곤 감독의 신작 ‘명당’을 통해서다. 역사적 사실과 전통의 풍수지리를 적절히 버무린 이 작품에서 그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지관(地官)을 연기했는데, 그 모습이 꽤나 흥미롭다. 왕을 섬기는 조선의 관료부터 복수의 칼을 가는 한 남자의 모습까지 다채롭게 그려낸다.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과 나라의 흥망을 내다볼 땐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이번 작품으로 3년 만에 관객을 찾는 조승우를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조선 말, 땅의 기운이 인간의 운명을 바꾼다고 믿는 천재 지관 박재상과 천하명당을 차지해 권력을 누리려는 이들의 암투가 벌어진다. 대를 이어 제일의 권력을 거머쥐기 위한 장동 김씨 부자와 무너진 왕권을 바로잡으려는 흥선은 힘의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조승우가 연기한 천재 지관 ‘박재상’은 대쪽 같은 성품을 가진 인물이다. 권력을 잡기 위한 이들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꿋꿋한 면모를 잃지 않는다. 주변의 산세와 지형으로 ‘명당’을 가려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조승우는 이런 재상을 “클래식하지만 힘 있는 캐릭터”라고 말한다. 다른 인물들이 ‘휘몰아치는 태풍’이라면 재상은 그 중앙에 있는 ‘태풍의 눈’과 같은 캐릭터라고. 그는 “겉은 고요하지만 안은 강력한 인물이면서 극 중 모든 캐릭터와 연결 돼 있다”며 “과하지 않게 그려내는 게 관건이라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일까. 조승우가 그린 재상은 잔잔하지만 강렬하다. 눈빛 하나, 대사 한 마디까지 진심을 담아 눌러낸 덕분이다. 캐릭터의 성장도 눈에 띈다. 한 가문을 흥하게 할 ‘사람 묻는 땅’을 주로 찾던 재상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사람 살릴 땅’을 찾기 시작하는 것. 조승우는 “인물의 변화를 함께 담아내려면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했다”면서 “캐릭터들 사이에서 작품을 묵직하게 받쳐낼 수 있는 역할이 뭘지 고민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영화는 제작사 주피터필름의 역학 3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로, ‘관상’(2013)과 ‘궁합’(2018)의 흥행을 이끈 제작진이 다시 한 번 뭉쳤다. 이 작품의 주된 소재는 풍수지리. 조승우는 천재 지관을 연기하며 이런 점에 관심을 갖게 됐단다. “원래는 풍수지리에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이번 작품하면서 실생활 속 작은 점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나서 잠을 잘 못 잤는데, 알고 보니 침대가 북쪽을 보고 있더라고요. 원래 자는 방향은 남쪽이 좋다는 이야기를 이번 작품을 하며 들었거든요. 예전이었으면 스쳐 지나갔을 이야기인데 좀 더 관심이 갔죠. 하하”
이 작품은 ‘좋은 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덕분에 영화에는 우리 전통의 풍수지리와 역학 요소가 듬뿍 담겼다. ‘명당’을 ‘제2의 주인공’이라 말할 만하다. 눈에 띄는 점은 최초로 천년사찰인 화엄사의 모습이 담긴 것. 화엄사는 극 중 ‘가야사’로 등장하는데, 그 모습만으로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조승우는 “좋은 경치 보면서 즐겁게 촬영했다”며 “화엄사에서 촬영을 하는데 경치에 놀랐다. 작품에 그곳의 모습이 담겼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촬영 끝나고 주변 맛집에 가 밥 먹고 동료들과 이야기 나눴던 것도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조승우는 이번 작품으로 박희곤 감독과 영화 ‘퍼펙트게임’ 이후 7년 만에 재회했다. 박 감독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데 대해 그는 “감독님이 정말 능숙해지셨다”며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셨다. 따뜻하고 귀여운 면모도 있다”고 말했다. 연기 합을 맞춘 배우들에게도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 작품에서 세 번째로 연기 합을 맞춘 유재명에 대해서는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라며 “늘 옆에 있어야 하는 존재, 정신적 지주 같은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지성에 대해서는 “이래서 ‘지성 지성 하는구나’ 싶었다”면서 “감독이나 제작자가 됐을 때 이렇게 열정적인 배우랑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힘줘 말했다.
지난 2000년 영화 ‘춘향뎐’으로 충무로에 발을 디딘 조승우는 올해로 스크린 데뷔 19년을 맞았다.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설 땐 떨린다”는 그는 스크린과 브라운관, 무대를 오가며 열심히 달려왔다. 작품을 선택할 때엔 ‘메시지’를 우선적으로 본다는 조승우는 “담백한 맛이 느껴지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꾸밈없고 진정성 있는 것을 좋아해요. 곱씹어 생각할수록 여운이 있고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
남유정 기자 seas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