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대륙을 가다] 볼리비아 티티카카호수
입력 : 2018-11-21 19:10:49 수정 : 2018-11-21 22:30:20
호수 푸른 물결은 파아란 하늘과 적절히 어우러졌다
티티카카호수는 세상에서 배가 다니는 가장 높은 곳의 호수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물결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해발고도 3812m. 지구상에서 배가 다니는 가장 높은 위치의 호수. 면적 8500㎢로 제주도(1849㎢)의 4.6배. 페루와 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이야기다. 오늘은 정든 쿠스코를 떠나 푸노(Puno)로 간다. 티티카카호수를 보고 볼리비아로 넘어가기 위해서다.
페루·볼리비아 걸쳐 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
우로스·타킬레 섬 유람선 투어
주민들 원시적 생활 모습 인상적
해안도시 코파카바나 항구서
배로 이동한 태양의 섬 자연
도심에 지친 몸과 마음 치유
■잉카의 전설이 깃든 곳
오전 8시 40분에 쿠스코를 떠난 버스는 오후 5시 20분 푸노에 도착했다. 남미 여행을 하다 보면 버스로 7~8시간 이동은 예사다. 남미 여행이 체력을 요하는 까닭이다.
하늘과 맞닿은 고원 도시 푸노는 페루와 볼리비아를 오가는 길목에 자리해 수많은 여행객들에게 관문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잉카의 창시자 망코 카팍이 강림한 티티카카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다.
숙소에 짐을 푼 뒤 시내 중심가로 나가 본다. 페루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아르마스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정비돼 있다. 아르마스광장에서 대성당 위쪽을 바라보면 양옆으로 2개의 동상이 보인다. 오른쪽은 티티카카호수를 향해 손을 뻗은 잉카제국의 초대 황제 망코 카팍이고, 왼쪽은 날개를 활짝 펼친 하얀 콘도르 상이다. 푸노의 정체성을 한 눈에 보여주는 풍경이다.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내일 티티카카호수 배 투어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안데스산맥의 알티플라노 고원의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해 '하늘 호수'로도 불리는 티티카카. 케추아어로 '티티'는 퓨마를, '카카'는 호수를 일컫는 말이다. 호수는 마치 발을 뻗은 퓨마의 모습처럼 생겼다. 전설에 따르면 망코 카팍이 이 호수의 '태양의 섬'에서 태어났다.
다음날 일찍 티티카카호수 투어에 나섰다. 푸노항에서 떠나는 유람선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원주민 삶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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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관광객들을 환영하는 우로스섬 주민들. |
오늘 방문할 곳은 우로스(Uros) 섬과 타킬레(Taquile) 섬. 우리가 탄 유람선의 해설사는 유창한 스페인어와 영어를 차례로 구사하며 티티카카와 호수에 얽힌 각종 이야기와 전설, 호수에 사는 생물들에 대해 설명을 한다.
유람선이 항구를 떠난 뒤 불과 10여 분 만에 우로스섬에 도착했다. 우로스는 섬 이름이기도 하고, 잉카족과 코야스족을 피해 호수로 들어와 섬을 만들고 힘겹게 살아온 우로스 부족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로스는 물 위에 떠 있는 특이한 섬이다. 갈대의 일종인 토토라를 쌓아 만든 인공섬인 셈이다. 인공섬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지혜롭다. 토토라 뿌리를 잘라 줄로 묶어 1m가량 두께의 뗏목을 만든다. 그 위에 바싹 마른 토토라 줄기를 1m가량 덮으면 된다. 그 위에 해마다 새로운 토토라를 덮어준다. 이 섬이 물 위에 뜰 수 있는 것은 토토라의 뿌리가 머금은 공기 덕분이다. 이곳에는 이 같은 인공섬이 50여 개쯤 떠 있다. 한 가족 섬에서부터 수백 명이 생활할 수 있는 크기까지 규모가 매우 다양하다. 학교나 교회가 있는 섬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5가구 18명이 살아가는 중간 크기의 섬이다.
"감사라끼(환영합니다)!"
우리가 배에서 내리자 알록달록한 전통복장을 한 여인네 네댓 명이 줄을 서서 손을 내밀며 환영인사를 한다. 섬은 푹신푹신하고 조금 울렁거린다. 사람은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 법인데, 평생 움직이는 섬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라니, 마음이 짠하다.
섬 주민들은 관광객들을 앉혀 놓고 인공섬을 만들고 낚시를 하는 방법 등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한다. 토토라를 잘라 먹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토토라는 이곳의 먹거리이기도 하단다. 섬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바다택시'를 탈 차례이다. 바다택시는 토토라로 만든 거룻배로, 섬과 섬 사이 교통수단이었으나 지금은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관광용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때부터 주민들의 상술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바다택시는 예외 없이 타도록 프로그램화돼 있다. 기껏 작은 섬 한 바퀴 도는 데에 1인당 3400원씩이나 받는다. 바다택시에서 내리면 주민들은 본격적으로 제품 판매를 시작한다. 타고 온 유람선이 떠나고 없으니 꼼짝없이 제품 홍보 세례를 받아야 한다. 하는 수 없이 식탁보 하나를 샀는데, 이번에는 잔돈이 없다며 아예 거스름돈을 내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몹시 언짢았다.
■광활한 호수에 맘을 풀다기다린 끝에 다시 유람선을 타고 타킬레섬으로 간다. 아스라이 수평선이 보이는 호수라니, 그 크기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반도의 남쪽 섬에 갇혀 살아온 이에게 제주도 5배 가량 규모의 호수는 아무래도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끝 없이 푸른 물빛이 파란 하늘과 몸을 섞으며 만나 만들어내는 황홀경에 우로스섬에서 겪은 언짢은 마음이 씻겨나간다. 내가 경솔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상의 관광지 어디엔들 상술은 있기 마련이다. 왜 섬 주민들에게만 절대 순수의 삶을 바라는가. 자신은 문명세계에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여행지에서는 원시적 삶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이 아닌가. 티티카카호수가 나를 다시 관대하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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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섬' 정상으로 가는 호젓한 길. |
배는 1시간 20분을 달려 타킬레섬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내리니 높은 고도에 숨이 턱턱 막혀온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 끝에 섬의 정상에 도착했다. 타킬레섬은 뜨개질하는 남자들로 유명한데, 오늘은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주민들이 직접 잡은 송어구이를 퀴노아 수프와 곁들여 점심을 먹으면서 농사와 관련된 전통춤 공연을 봤다. 타킬레섬은 그 고립성 때문인지 여전히 원형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때묻지 않은 태양의 섬볼리비아 라파즈에서 여행사를 통해 볼리비아 영토에 해당하는 티티카카호수 태양의 섬(이슬라 델 솔) 투어에 나섰다. 우리는 푸노에서 2박을 한 뒤 국경을 넘어 라파즈에 와 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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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카바나 해변은 수채화를 연상시킬 만큼 아름답다. |
라파즈에서 3시간 30분이나 달린 버스는 아름다운 해안도시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코파카바나에서 다시 배를 타고 1시간가량 들어가야 태양의 섬에 다다른다. 먼 여정이다.
하지만 태양의 섬 투어는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내내 따라오는 티티카카호수의 푸른 물결과 아스라이 떠 있는 섬들, 그리고 유유자적하는 뭉게구름들은 도심에 지친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잉카의 전설이 깃든 태양의 섬은 때 묻지 않은 원시미를 뿜어낸다. 가파른 산길에서 만나게 되는 알파카와 코흘리개 어린아이들, 잉카시대의 경작지에서 당시 농법대로 쟁기질을 하고 있는 농부들, 목덜미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따가운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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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스섬의 수상택시. |
2시간의 투어 끝에 되돌아오기엔 너무나 아까운 장면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강력히 추천한다. 태양의 섬 투어에 나설 바엔 반드시 1박을 하고 오시라고. 호수 섬의 밤하늘은 얼마나 많은 별들로 반짝일 것이며, 섬의 침묵은 얼마나 깊고 푸를 것인가. 못내 아쉽다.
푸노(페루)/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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