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한겨울 부산 하늘에 우박이라니!

입력 : 2023-12-19 18: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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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추워도 너무 춥다. 바람마저 거세다. 겨울철마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시베리아의 차고 건조한 북서풍은 웬만해서는 우리나라 최남단인 부산·울산·경남 지역까지는 도달하지 않는데, 이번만큼은 아니다. 매서운 바람이 그대로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길게 관통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봄날 같이 따뜻한 날씨에 “이러다 겨울은 언제 오나” 하며 어리둥절해 하던 시민들은 준비도 없이 갑작스러운 칼바람에 참으로 당혹스럽다.

지난달 초, 한국가스공사의 한 직원이 전화로 이번 겨울 날씨에 대해 문의했을 때, 엘니뇨의 영향으로 대체로 따뜻하겠지만 때때로 북극의 강한 한기가 한반도로 내려올 가능성도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예상은 곧 현실이 되어 현재 시베리아의 영하 40도 이하의 극한 한기가 한반도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추위의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면 지금쯤 꽤나 마음이 불편했을 듯하다.

온탕 냉탕 오가는 한반도 겨울 날씨

우박 등 상식 벗어난 사례들도 많아

계절 안 가리는 기상재해 발생 암시

국가 차원 다양한 재난 대비책 필요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겨울 날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매해 겨울철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날씨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해 온 필자 역시 올해 겨울은 보면 볼수록 놀랍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12월 중순 따뜻했던 기운을 일시에 걷어내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한반도 전역에서 쏟아진 겨울 폭우와 우박이었다.

강원도 산간 지역에는 여름철 집중호우를 방불케 하는 200mm에 육박하는 비가 하루 만에 내렸고, 부산에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손톱만 한 우박이 떨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우박이 내린 날, 부산은 낮 기온이 14도를 넘는 등 겨울 치고는 이례적으로 따뜻한 날씨였는데 저녁이 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북서쪽에서 강한 찬바람이 한반도 깊숙이 매섭게 밀려왔고, 강한 비구름이 순식간에 발달하였다. 그 결과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엄지손톱만한 우박까지 후드득 떨어진 것이었다.

전례가 없는 현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박은 엄청난 상승기류를 동반한 두께가 5km가 넘는 두꺼운 구름인 적란운이 만들어 내는데 통상 이 정도의 구름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적도 지역에 가까운 곳에서나 잘 나타나고, 우리나라에서는 계절이 바뀌는 봄철과 가을철에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강하게 충돌하는 경우에 드물게 관찰되곤 했다. 특히 대륙의 찬 공기가 내려오기 힘든 부산에, 그것도 한겨울에 우박이 내린 건 지금까지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라 기상학자인 필자에게도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부산 하늘에서 쏟아진 이례적인 우박은 단순히 어쩌다 한 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최근 수년간 반복되고 있는 겨울철의 급격한 기온 변동은 더 이상 한반도의 겨울이 마냥 춥고 건조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구온난화가 심화될수록 우리나라에 계절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기상재해가 나타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우리나라 날씨 패턴을 심각하게 바꾸어 나가고 있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대로 가다가는 빠른 속도로 데워지고 있는 한반도 주변의 바다는 계절을 막론하고 언제든 폭우를 쏟아낼 수 있는 수증기를 한반도에 꾸준히 공급할 것이고, 사그라들지 않는 지표면 열기는 겨울철에도 거대한 적란운을 시도 때도 없이 만들어 내며 폭설과 폭우를 번갈아 가며 내리게 할 것이다. 이러다가 계절의 경계마저 희미해지는 건 아닌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며칠 남지 않은 2023년,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올해가 인류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극단적인 이상기후로 어지럽게 뒤덮히고 있는 2023년을 마무리하면서 점점 명확해지고 있는 사실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탄소를 줄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가 빠르게 탄소 배출을 줄여나가더라도 극단적인 기상재해는 눈에 띄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대기 중으로 배출해 온 온실기체의 양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욕조에 물이 가득 차 있는데 수도꼭지를 잠근다고 해서 곧바로 수위가 확 낮아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살벌한 기후에 적응하고 예상되는 재난에 최선의 대비를 하는 것도 국가가 책임져야 할 중요한 미션 중의 하나이다. 올 한 해 전 세계에서 깨진 온갖 기상재해 기록들을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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