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중 결론이 예상되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가 ‘5부 능선’쯤에 다다른 상황에서 여야 내부에서 조기 대선을 겨냥한 차기 주자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지율 정체에 빠진 이재명 대표가 ‘우클릭’ 행보로 중도 확장에 나선 가운데 비명(비이재명)계 주자들도 이 대표를 집중 비판하고 나서는 등 대권 레이스에 불이 붙는 양상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표면적으로 윤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차기 주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여권의 경우, 홍준표 대구시장,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이미 차기 대선 출마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혔고,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4선 서울시장으로서 쌓은 경험은 일종의 공공재”라며 출마를 시사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16일 대표직에서 물러나 잠행하던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설 연휴를 전후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보수 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 여야 원로들을 잇따라 만나 정국 상황과 자신의 정치 행보에 관한 조언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친한(친한동훈)계인 김상욱 의원은 전날 한 전 대표의 공개 활동 시기에 대해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 정도부터는 움직임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에 발맞춰 친한계 모임인 ‘언더73’도 오는 7일 김영삼 전 대통령 기념관에 가서 김현철 이사장과 만나는 등 한 대표의 등판에 대비해 외연 확장에 나서는 모습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가장 먼저 앞장서는 ‘퍼스트 펭귄’이 되겠다”며 사실상 조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범보수 주자인 이 의원은 국민의힘 후보와의 막판 단일화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이 의원은 일단 “(범보수 주자 중) 저와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간다면 끝까지 갈 것”이라며 완주 의지를 보였다.
범보수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윤 대통령) 탄핵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이를) 단정할 수 없다”며 “검토하거나 생각한 것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강성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김 장관이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지는 대로 출마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역시 ‘내란 심판’이 우선이라며 조기 대선을 섣불리 언급하진 않지만, 이 대표 스스로가 지지율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친기업 행보를 강화하는 등 대선 밑작업에 돌입한 모습이다. 이에 비명계 대권주자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부겸 전 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등도 최근 본격적으로 이 대표에 대한 견제 목소리를 내면서 존재감 키우기에 나섰다. 김 전 총리는 5일 CBS 라디오에 출연,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해 “이 대표가 과거 어려울 때도 법원을 믿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오히려 그렇게 (법원을 믿고) 가는 것이 정도”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재판 지연’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김동연 지사 역시 이날 이 대표의 ‘민생지원금 포기’ 발언에 대해 “민생회복지원금을 하자고 추경을 하는 것인데 그걸 빼자고 하면 ‘무슨 추경이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 대표의 ‘우클릭’ 행보에 대해서도 “실용주의적 접근을 우리가 (추구)해야 될 가치·목표와 바꿀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친문(친문재인)계 대표 선수인 김 전 지사는 이 대표의 ‘개헌’에 대한 입장을 비판했다. 그는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개헌보다)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는 이 대표 발언에 대해 “내란은 반드시 단죄해야 되는 대상이지만 그냥 단죄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면서 “내란을 극복하는 것의 완성이 개헌”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선거(총선) 과정에서 여러 이유로 상처받는 분들이 생겼는데 그분들을 끌어안지 않고 어떻게 대선에서 이기겠느냐”면서 “더 큰 민주당을 만들지 않고 역대 대선에서 이긴 사례가 없다”고 총선 당시 ‘비명 학살’ 공천에 대한 이 대표의 사과와 통합 노력을 거듭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김영록 전남지사도 최근 ‘호남 주자론’을 내세우며 대선 출마 의사를 굳혔다고 밝혔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