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으로서 지역과 함께 성장해 온 만큼, 지역에 대한 책임과 상생의 가치에 대해 깊이 고민해 주셨으면 합니다.”
변광용 경남 거제시장은 28일 ‘2000억 원 규모 지역상생발전기금’ 공약 논란에 대해 “죽어가는 지역 경제 회복과 기업 발전을 도모하고 조선업 종사자와 23만 거제시민 모두가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획기적이고 과감한 결단”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거제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적극 해명에 나선 변 시장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치이기에 이렇게 논란될지 예상 못 했다. 의도와는 다르게 곡해, 왜곡되게 전달되는 부분이 있어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운을 뗐다.
상생기금은 변 시장의 4·2 재선거 핵심 공약 중 하나다. 거제시와 지역에 사업장을 둔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이 향후 5년간 매년 100억 원씩 출연해 마련하는 것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애초 규모를 2000억 원으로 잡았다가, 취임 후 실무 검토 과정에서 1500억 원으로 조정했다.
조성된 기금은 △중소상공인 지원 △지역 특화 개발 △기업 환경 개선·지속 성장 강화 △내국인 고용 인센티브 △지역 출신 정규직 채용 △노동자 실질임금 향상 등에 투입한다. 이를 통해 지역과 기업, 노동자 상생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변 시장은 이를 토대로 지난 18일과 22일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 사업을 찾아 경영진에 기금 설치와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실무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거제시는 앞으로 민관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구체적인 출연 방식과 사용처 등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논의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양대 조선소 경영진은 기금 조성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동참 여부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결코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한 사안인데, 공약 설계 과정에 사전 논의나 교감이 없었던 탓이다.
거제시가 출연 제안을 한 양대 조선소 가운데 삼성중공업은 협의체 구성 참여에는 긍정적으로 답했다. 한화오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를 두고 안팎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무리수’, ‘기업 팔 비틀기’, ‘상생이 아닌 강제, 협치가 아닌 독단’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대해 변 시장은 기업과 사전 교감이 부족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무엇보다 경영진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 경영진이 먼저 결정하면 실무 협의를 진행하자는 의도였다”고 부연했다.
이어 최근 수주 호황으로 겉은 화려한 듯 보이지만 속은 곪아가고 있는 ‘조선도시’의 이면을 짚으며 “기업과 지역, 시민과 노동자 그리고 소상공인은 하나로 연결된 지역 공동체다.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 시장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2020년에 6800여 건이던 관내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3200여 건으로 반토막 났다.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도 2021년 104.4에서 79.16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20%였던 옥포 지역 상가 공실률은 30%로 올랐다. 밑바닥 경제를 움직이는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일련의 지표는 변 시장이 꾸준히 제기해 온 내국인 고용 확대와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거제시 내국인 인구는 2020년 24만 5000여 명에서, 올해 3월 말 기준 23만 2000여 명으로 1만 3000여 명나 감소했지만 외국인 인구는 6600여 명에서 1만 5000여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변 시장은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라며 “계속 이렇게 내버려두면 거제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기업이 지역에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에 떠났던 청년들이 다시 돌아올까, 저는 아니라고 본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2015년을 전후해 최악의 경영난에 직면했던 양대 조선소에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실을 되짚으며 “지금이야말로 지역에 뿌리내리고 지역과 함께 성장해 온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상생기금은 이를 위한 마중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변 시장은 2021년 시장 재임 시절, ‘거제형 조선업 고용유지 모델’을 도입했다. 일감이 바닥나 대규모 실직 위기에 처한 조선소 노동자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정부가 아닌 지자체 주도로 시행된 첫 고용유지 정책이었다. 거제시는 이를 근거로 경영안전자금, 고용유지장려금, 각종 세제 혜택에 740억 원 상당의 재정을 투입했고, 조선소 숙련 노동자 7000여 명이 실업 위기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변 시장은 “100억 원이라는 금액은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기준이다. 양대 조선소도 연간 100억 원 출연 여력은 된다고 판단했다”며 “이 정도 규모라면 단기적 효과에 그치지 않고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덧붙여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끝까지 함께 논의하겠다”면서 “완벽할 순 없겠지만, 긍정적인 시각으로 동반성장을 위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응원과 지지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